본문 바로가기

여행의 즐거움

일본여행 3<헤이안 (평안)신궁, 니조조(二條城)>

 

 

헤이안 신궁 가는 길 곳곳의 이색적 분위기에 흥겹다.

노변에 선거포스터도 눈에 띤다.

여행을 할 때는 나그네의 기분에 젖으려고 한다.

나그네는 일상을 벗어난 즐거운 일탈을 위해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색다른 문화를 체험한다.

교토의 문화에 흠뻑 젖고 싶은 아침이다.

 

 

헤이안(평안) 신궁 입구에서 부터 홍색 일주문의 위용에 압도된다.

궁전에는 옻칠한 붉은 기둥과 초록 기와가 인상적이다.

여러 층으로 쌓은 형태는 이국적이지만 건축의 형태가 어딘가 친숙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디 보자. 누구를 모신 신궁이던가?

아. 언젠가 나도 들은 적이 있었어.

현재의 일본 천황(명인)이 자신은 백제의 피를 타고 났다는 그런 어조의 말을........

그러니까  이 신궁이 칸무덴노[桓武天皇] 천황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데

그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다.

 

이야기가 실마리가 풀리니 어디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군그래.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 아닐까?

나는 한일 동족론이라는 글을 읽게 된다.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에 지속적으로 진출하여 일본 열도를 정복한 사실은

일본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과 옛 문헌 등이 명백히 입증해주고 있다.

고대에 일본 열도는 미개한 선주민들의 터전이었고

한반도의  선진문화가 전파되고

동시에 삼국 사람들과 선주민 간 혼혈(混血)도 이루어졌다.

 

먼저 한반도에서 북규슈(北九州) 지역으로 건너간 세력이

지배의 터전을 일구기 시작한 때가

바로 ‘야요이(彌生)시대’(BC 3세기~AD 3세기경)다.

이 시대의 한국인 지배자들로는 오우진(應神, 4세기경)천황과

그의 아들 닌토쿠(仁德, 5세기)천황 부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에 의해서 고대 일본의 가와우치왕조(河內王朝)가 세워졌고.

오사카 지방을 중심무대로 삼았다.

 

한일동족설은 이와 같은 역사 전개 과정에 필연적으로 부각된다.

 

일본 역사상 최초로 한일동족설을 세상에 공표한 사람은

기타바타케 치카후사(北白田白親房, 1293~1354년)였다. 

 그의 저서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 14세기)’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옛날에 일본은 삼한(三韓)과 동종(同種)이라고 전해 왔으며,

그 책들을 칸무(桓武, 781~806년 재위) 천황 때에 불태워버렸느니라.”

 

칸무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왜 옛 서적들을 모두 분서시킨 것일까.

 이 사항에 관해서는 지금 현재까지 한일 양국 학자들 간에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고 한다.

 

교토시  히라노미야모토쵸(平野宮本町)에는 ‘

히라노신사(平野神社)’라는 큰 사당이 있다.

 히라노신사는 백제인 칸무천황이 8세기부터

그의 백제 조상신(祖上神)들을 모시고

궁중 제사를 지내온 유서 깊은 터전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일본인들은 이 유명한 신사를 모르거나,

알아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교토라는 일본의 유명한 문화유적 도시가 생긴 것도

바로 칸무천황에 의해서였다.

칸무천황은 794년에 교토 땅을 새로운 왕도로 삼고,

나가오카경(長岡京)에서 천도해 왔다.

칸무천황은 당시 교토의 새 명칭을 헤이안경(平安京)이라 칭하고,

백제신의 신사도 이곳으로 옮겨 모시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이 히라노신사야말로 장장 1200년이나 이어온,

참으로 유서 깊은 명소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칸무천황의 생모 화씨부인(1789년 몰)은 왜국 왕실에서

백제조신(百濟朝臣)이라는 벼슬을 지낸

화을계(和乙? 야마토노 오토쓰구)공의 딸이었다.

화을계 조신은 백제 무령왕(武寧王, 501~523년 재위)의 직계 후손으로

 백제에서 왜왕실에 건너가 근무했었다.

이 당시는 백제 왕실의 왕족 다수가 왜왕실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벼슬을 하던 것이 관례였다.

(출처: http://www.baedalguk.com/bbs/zboard.php)

 

 

으응......그랬었구나. 끄덕끄덕

건물이 친숙한 이유도있었네.

천황들의 궁궐인 교토어소는 신라의 저명부 가문의 후예들과 백제인 건축가들이 지었다는군. 그래.

 

신사를 모르고 일본 여행을 하지 말라. 본전도 못뺀다. ㅎㅎ

그리고 신사참배와 같은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적 경험 때문에

신사 그 자체를 편협한 감정을 앞세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의 총체적 유산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앗! 이런 일이.......

둘러보기 전에 우리 사찰의 감로수처럼 생각하고  한 바가지 떠서 순식간에 마셔 버렸으니.........

데미즈야[手水屋 : 경배하기 전 손과 입을 씻는 세면대>에서

습속의 차이에서 오는 실수라 남들이 귀엽게 봐줄까?

 

신사란 일본 고유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이다.

 신사는 대체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① 혼덴[本殿 : 또는 신덴(神殿)] : 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보통 신관(神官)만이 들어갈 수 있다.

 

② 헤이덴[幣殿 : 또는 노리토덴(祝詞殿)] : 신관에 의해 종교의식이 행해지고 기도를 올리는 곳인데,

 이를 통해 가미[神]를 부르고 다시 되돌려보낸다.

 

③ 하이덴[拜殿] : 경배하고 기도하는 곳으로, 규모가 큰 신사에는 가구라덴[神樂殿 : 의식무용을 추는 곳]·샤무쇼[社務所 : 신사의 사무실]·데미즈야[手水屋 : 경배하기 전 손과 입을 씻는 세면대]·고마이누[拍犬 : 수호동물의 상]·도로[燈籠 : 봉헌에 의해 세워진 석등 또는 청동등] 등과 같은 다른 구조물이 있기도 하다.

 

신사의 신성한 영역은 도리이[鳥居]라고 하는 출입문으로 구별되어 있다.

1신사의 운영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내무성에 의해 관장되고 정부기금의 보조를 받았다.

전후 국가신도가 폐지되어  재정은 신도들이나 다른 기도인들의 봉헌, 관광수입, 그리고 유치원과 같은 지역사업활동 등에 의존한다.

신관들은 각자 직업을 가짐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신사의 대부분은 신사협회인 신사본청(神社本廳)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 회원수는 1억 700만 명의 신도 숭배자들 대다수를 포함하고 있다.

각 신사는 신관과 신도 대표들로 구성된 신사위원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도리 너머의 신성한 본전을 흘낏 쳐다보고 넓은 뜰을 둘러 본다.

벽보에..... 영춘(봄맞이),액제(액운을 없앰),개운(운세 보장) 신시(신의 화살) 1500엔 을 보고

재정 수입을 얻기 위한 한 방편이기도 하리라. 

 

마당 한 켠에는   신도들의 간절한 소원을 적은 목편이 걸려 있다.

기복 신앙의 형태다.

 잠깐만........

서너명의 일본 아줌마들이 다가와서 뭐라고 뭐라고??????????? 한다.

(말이되는 소리를 해야 알아듣지: 허풍선생의 익살스런 표현)

사진을 찍어 준다고........

 

말만 통하면 경내 산책이라도 같이 하며 일본 친구가 될 수도 있으련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여기까지는 공짜지만

정원 구경은 거금 600엔이다. 본전 빼야할텐데.......... 

 

 

 

 

 

 

국가가 정한 명승지 神園 안내도

한국에서 특별히 모신 해설사 예주 권 명훈상 센세이

 

 

 

 

 

 

 

 

뒤로 보이는 도리이는 24미터나 되는 가장 큰 도리로 신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문이다.

 

 

 

 

 

 

 

 

헤이안진구는 경내가 휑하여 볼게 없다 싶지만 천만의 말씀.......

다이고쿠지(태극전) 왼쪽에 있는 신엔(神苑)이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이다.

여기 와서 신엔에 안들어가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나뭇가지에는 오미쿠지(부적)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액을 면하고 복을 비는 마음은 우리나 일본이나...........

 

 

 

 

 

 

신궁을 둘러싼 정원을 산책하기로 한다.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에 취해보자구.

이 정원의 수목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귀빈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좋은 정원은 자연의 축소판으로 꽃과 나무와 풀과 물과 돌 같은

다양한 자연적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감정이 고양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장엄한 오케스트라처럼...........

어느 새 우리는 품격있는 관객이 되어 뜰을 거닐며 동화되고 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정원석의 배치 등등 의 요소들이 철저하게 계획되고

모든 정성을 다 쏟아내서 관리하는 완벽함에 섬뜩할 지경이다.

낙엽 한 잎, 돌 한 개도 길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다. 더 이상 손 볼 필요가 없는 것 같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대형 분재 작품이라고 봐도 무난하다.

 

어떤 이들은 분재에 대해 자연성을 해치는

나무를 학대하는 것이라고 비판도 하지만

좋은 점만 수용하면 되지 않는가?

실은 나도 담양의 소쇄원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과 은연중에 비교하기도 한다.

서로의 차이를 알지만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겨울의 나목들이 연못에 제 얼굴을 비추고 있다.

궁전의 아름다운 지붕이 연못에 비쳐지는 저 고즈넉함........

                        못의 징검다리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일행은 어느 새 꽃이 되었다

 

겨울 裸木

 

 

‘벗은 나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물고기 가시뼈 같은 연약한 잔가지며

갓난 토끼의 못 뜬 눈 같은 움마저도

부끄러워 가리지 않는 솔직함 때문이다.

 

 

‘벗은 나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이파리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벌레도

작은 새 소리마저 떠난 궁상스런 빈 가지에

큰 둥지를 꿈꾸는 기다림 때문이다.

 

 

‘벗은 나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농부의 억센 손 같은 잎마저 떠난

凍土의 사막에서 하루하루를 延命하면서도

구차하지 않은 淸貧으로 당당하기 때문이다.

 

                                                                                                                                                                                   (내 글 한 편이 언뜻 떠올라서........)

  

 

 

 

 

 

어째 요것은 우리 정서에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