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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월성천 - 철쭉을 품은 바위

 



노파의 주름살 투성이 얼굴 같은 바위는

내가 걷는 길에서 하천 건너편에 있는데다

높은 옹벽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있다

지나칠 때마다 그 바위에 마음이 끌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근접해서 주름진 틈을 더듬으며

바위의 체온이며 심금을 울리는 메세지를 듣고 싶었다


 

오늘 바위 투성이의, 길 아닌 길로 우회해서

아직은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바위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 바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해 보이는

바위의 어느 한 구석에도 매끈한 데가 없이

검버섯 핀 얼굴이 온통 상처 투성이에 푸석푸석하고 초췌한 안색이다


 

장구한 세월에 질기고 메마른 가슴이 허물어지는 중이다

하고많은 사연들은 침묵하며 삭아내리는 늑골 한 켠에 나무 덤불을 품고 있다

철쭉 몇 그루가 벌어진 늑골 사이에 뿌리 내린 채 꽃망울을 맺고 있다

며칠 후면 연분홍 꽃을 피워 검버섯 핀 바위 얼굴에 미소가 배어나겠다


 

「오길 잘 했구나」

저으기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며 내 가슴이 촉촉히 젖는다


 

바위가 허물어지며 생명을 품는 일이나

바위에 다가가고 마음을 사유하는 일이나

사랑하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동반자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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