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가 내리는데 비옷을 입고 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 하나가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낫을 들고 무성한 고구마 순을 치는 일을 하더니
지금은 쳐낸 순을 다듬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빗줄기가 거세져도 멈출 줄 모르고 일에 열중하고 있다
(나에게는 여럿의 내가 있어 때로는 내가 나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오늘은 밭에서 일을 하는 나를 무대에 올리고
동영상을 촬영하듯 사유의 유희에 빠진다)
궁상을 떨고 있네
비 그치면 하지
까짓 것 뭐가 대수라고.....
돈 몇 푼어치 밖에 안될 일을......
시골 노인티가 자르르 넘치네 그려
(객석에 앉은 내가 손가락질을 하며
던지는 말투에 야유와 조롱이 섞어 있다)
비를 맞으며 일하는 것이 즐거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랍니다
고역이 아닌 우중의 유희 같은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지요
순을 쳐내다가 불현듯 오랜 투병 중인 친구 하나가 생각이 나서
순을 다듬어서 갖다 주려고 한답니다
굳이 문병이라는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소통하고 부분적이지만 공유하려는 것이지요
의례적인 문병의 박카스 박스에는 담기지 않는
꾸밈없는 소박하고 수수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흔히 질박함이라고 표현하는 마음의 선물인 셈이지요
( 무대에 있는 내가 항의하듯 변명하듯 또렷한 어조로 말한다)
청곡의 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