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진정한 소통

얘야 우리 뜰에 산책하러 가자
너는 처음 보는 꽃들이겠구나
이 꽃 이름은 할미꽃, 저 나무 이름은 노각나무란다
이름을 아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다
나는 꽃이나 나무를 대할 때는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한단다 그런 마음으로 대하면 힐끗 바라보지 않고 자세히 관찰을 하게 되지 눈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의문을 품고 물어보기도 한단다 그러다 보면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단다 어른들은 소통이라고 하지

할아버지는 이 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으응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단다 이른 봄에는 아기꽃의 귀여움이, 무더운 여름에는 꽃이 피어서 청년의 왕성한 힘과 아름다움이 , 가을에는 꽃이 지고 씨를 맺으며 쓸쓸한 노인처럼 다가 오기도 하지
또 어떤 날에는 꽃이 고생을 이겨내는 불굴의 용기를 배우며 응원을 하기도 하지

할아버지
이 꽃은 어때요?

얘야
나는 나의 느낌이 있고 너는 너의 느낌이 있어야 한단다
내 느낌을 자칫하면 네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된단다
할아버지는 그저 너와 함께 꽃밭에 있었던 것만으로 기쁘단다
내가 한 말은 참고로만 여기고 잊어 버려야 한단다
네가 나중에 자라면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것이란다

사람들간의 소통의 근거로 합리적 이성을 내세우는 서구의 전통이 능사는 아니다
합리적 이성에 대해 배우지 못한 어린이나 타문화권 사람이나 독창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합리주의에 대한 선이해가 없어 진정한 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선이해는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인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무매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나 스승의 가르침, 동화나 전설, 백과사전, 타인들의 세평 등은 선이해를 초래하여 자칫하면 고착되기 쉽다
나와 타자(사람만이 아니라 사물, 사건을 포함) 사이의 무매개적 소통은 서로가 하나로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성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개의 지평을 벗어나라고 한다
텅 빈 마음으로 마음 속에 허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배우고 아는 성심(구성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자기 해체의 과정이다
진정한 소통은 주체가 타자를 향해 열린 마음, 유연한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타자와의 조우로 이루어 진 것이고 앞으로도 수많은 타자들과 조우하며 새롭게 생성될 것이다

소통함으로써 공존과 공생이 이루어지고 비움으로써 깨어나는 것이다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쇠물팍은 마르고  (0) 2023.03.11
중간의 지옥  (0) 2023.01.27
망설이다  (0) 2023.01.19
청개구리 울음  (0) 2023.01.18
존재하는 즐거움  (0) 20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