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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쇠물팍은 마르고

지인의 블루베리 밭에 잡초를 막기 위해 부직포를 까는 작업을 하다 보니 뜻밖의 사건에 조우하게 된다
밭두둑에 말라 비틀어진 줄기가 곳곳에 많이 있어 이것을 캐내지 않으면 부직포를 덮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캐내기로 하던 참에 지나치는 분이 한 마디 한다
"세물팍이 징그럽그만요 "
쇠물팍이라니 ......
소의 무릎 같이 생겼다니....아하 요 녀석이 우슬이로구나
너 잘 만났다 반갑다 익히 이름은 들었지만 오늘은 피상적인  조우가 아니라 뜻있는 사건 하나를 만들어 보자구나
너도 괜찮지~이잉

나는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하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일을 놀이처럼 한다
나는 울타리 바깥을 욕망한다
어떻게 하면 블루베리 밭을 잘 가꾸어 수확량을 늘릴까 하는 유능한 농부의 꿈은 울타리 안의 목표에 불과할 뿐 내 꿈은 그 너머에 있다
그 꿈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욕망이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삶을 의미로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람결에 씨앗을 날려 블루베리 밭에 착륙을 하고 생명의 발아를 막는 지옥 같은 검은 부직포의 헤지고 벌어진 틈바구니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쇠물팍의 우연한 상황을 내 삶과 동등한 수평적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외경스런 눈으로 사색하고 부지런한 실리의 손으로 캐는 것이다

내가 돈을 밭고 일하는 처지가 아니라 다행이다
블루베리 전문 일꾼과 함께 일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다면 그와 다른 유의미한 차이를 생성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농기술과 이윤을 극대화하는 상인의 잇속에 포섭되고 말 것이다
부직포를 까는 오늘의 주된 작업에서 한 걸음 비켜나니  우슬을 캐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 된다
말라죽은 줄기 아래 하얀 뿌리들이 굵고 긴 것은 두어 뼘도 넘고 자잘한 잔뿌리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뿌리 위쪽에는 초록 새 움들이 나오고 있다

예쁜 꽃이 피기나 하나, 귀하기나 하나......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우슬이 신분을 상승해 내게 접근한다 나는 허리가 덜 아프게 무릎을 꿇고 삽으로 파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다
뼈를 강화하는데 특효가 있다니 차로 먹을까, 닭발과 함께 푹 고아서 먹을까 생각을 하니 다리가 안좋아 고생을 하는 친구 하나가 떠오른다
그래그래 나도 먹고 친구도 주자

부직포를 까는 주된 작업에 딸린 보조적인 일이 우연히 새로운 의미로 부상하게 된다
블루베리 밭을 잘 가꾸어 수확량을 늘러야 하는데 느닷없이 우슬이라는 풀에 관심을 돌리는 이런 사유방식은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다

가치를 어떤 강력한 권위나 전통이나 풍조, 사상 등이 일방적이고 편협하게 규정한 배열에 따르지 않고 우연이나 접속, 관계 등의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가는대로 유목적인 사유를 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아니라 덩이줄기처럼 사물들 사이의 연결과 접속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의미가 생겨난다

서쪽 뜰에서 목욕재계한 우슬 뿌리들이 햇볕에 몸을 말린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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