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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마음의 여백

여행을 하다가 호텔에 들면 깨끗이 치워진 공간이라서 좋다
침대의 하얀 시트와 정돈된 벼개, 화장실 변기통에 가로놓인 종이띠는 이전의 사용 흔적을 지우고 오로지 첫 사용자임을 상징하는 기호다
타인의 흔적이 없을 때 오로지 자신의 공간이 되어 편안한 휴식이 가능하다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은 세간살이가 없는 빈 방을 내어줄 때 최고의 예우다

어린이의 마음은 빈 방처럼 텅 비어 있다
본래의 마음은 맑고 투명하여 때나 흠결이 없다
어린이와 대화를 하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말간 거울처럼 대상이 비쳐진다 고착된 선입견도 편견도 없다 어떤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도 않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나 자비는 호텔방처럼 어린이의 사심없는 마음처럼 마음을 텅 비우며 타자와 접속하는 것이다 허심은 '나는 나다'라며 집착하는 현상적인 마음을 버려야 마음에 여백이 생긴다
온갖 자질구레한 세간들 같은 현상적 마음을 버려서 주체로서의 마음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수도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본래의 청정무구한 마음을 회복하려고 한다
내 마음의 참 주인은 본래적 마음인데 살아가면서 형성된 성심으로 인해 자기 회복의 길을 찾아가려고 한다

현상적 마음을 버리는 것을 공자는 오상아라는 표현을 했다
나도 오늘 내 장례를 치러야 한다
죽이는 것이 새로운 삶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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