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도꼬마리

도꼬마리 씨앗 몇 톨이 내 장갑과 바짓가랭이에 척 올라탄다 돌발적인 무임 승차다 씨줄 날줄을 얽어맨 틈에 안전벨트 삼아 제 돌기들을 찔러넣는다  이 순간을 얼마동안을 기다린 것인지 안도와 반가움이 묻어나온다
1.4 후퇴시 끊어진 철교에 다닥다닥 붙은 남행 피난민의 간절한 염원과 절박함도 배어나온다
귀찮아 떼어내지만 이제는 떼내는 장갑의 손가락에 악바리처럼 매달린다
필사의 몸부림에 짜증어린 얼굴을 펴고 잠시 일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어디 보자
타원의 체형 전신에 돋아난 돌기는 이동체에 달라붙기 위해 특화된 진화의 수법이구나
바람을 타고 가기에는 육중한 체구라 동물의 털이나 사람의 바짓가랭이를 노렀구나
날개를 갖지 못하는 것들도 비행할 수 있고 다리가 없는 것들도 걸어갈 수 있음을 진화의 지혜가 일깨운 것이로구나

신천지를 향한 꿈으로 늘 깨어 있으며 이동의 징후를 살폈구나
언제라도 홀가분히 떠나기 위해 등에 멜 봇짐 하나 준비하지 않았구나
언제 어디라도 뿌리 내려 종의 속성을 지켜내려는  절대정신으로 무장하고 억척스런 근성을 가젔으니 두려움 한 점 없구나

지금은 유랑의 시절, 신천지로 이동하려 도깨비 방망이 형상을 취한 신비의 베일을 엿본다
어딘가에 몸을 묻으면 정착해야 하지 뿌리를 내려 잎줄기를 부양하며 한 생을 살아야 하지
정착하여도 노마드의 꿈을 꾸며 씨를 맺지 현 세대에 못다 이룬 꿈을 다음 세대로 넘기며 하나의 개체라도 더 멀리 이주 시키려 하지  이주와 정착의 이중적 구조는 도꼬마리 유전자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네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의 이주  (0) 2023.04.23
쌍지창  (4) 2023.03.15
쇠물팍은 마르고  (0) 2023.03.11
중간의 지옥  (0) 2023.01.27
진정한 소통  (0) 2023.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