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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문명에서 원시로 추락

원시에서 문명으로의 발전 과정에는 시간적으로 오랜 간극이 있었으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역으로 문명에서 원시로 추락하는 것은 순간이며 우연적이며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든다
이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은 바로 어젯 밤의 정전이다

비가 내리는 야간에 갑자기 정전이 된 것이다
간신히 휴대폰을 켜서 양초를 찾아 불을 붙이고, 목이 마르지만 마실 물이 안나오고, 씻어내릴 물이 한 번 뿐인 화장실을 사용한다
공동주택 거주자들은 해결해 줄 믿는 구석이 있어 그저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이지만 단독 주택 그것도 시골인 경우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고통이 가중된다

내가 고작할 수 있는 일인 차단기를 살펴봐도 이상 없다
집을 짓고 15년만에 야간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찌해야할지 당황스러워하며 한 시간쯤 지나서 인터넷을 찾으니 대처법이 나온다(지역번호+123)
한 시간이 넘지 않아 고장 수리차를 타고 한전 담당자 두 분이 오셔서 점검 후 수리를 해 주었다
비오는 밤에 헤드랜턴을  끼고 전선주에 올라가 작업을 하는 직원들의 수고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이 교차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하는 사건은 정전된 후에서 대응법을 찾기까지의 당황스런 한 시간이다

문명에서 원시로의 추락!
첨단 과학기술 문명은 철옹성의 왕국이며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한 발 삐끗하여 원시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체험과 맥락이 유사한 영화(캐스트어웨이)가 언뜻 생각이 난다
예기치 못한 사소한 사건으로 주인공이 겪게 되는 운명을 다룬다

(이 글을 쓰는 중에 한전에서 설문조사 메시지가 와서 항목마다 최상의 점수에 체크하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전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시스템 전반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야기 중심으로 돌아가....
문명인들은 우연적 사건으로 엄청난 재난을 당할 수 있을 개연성을 예감한다
휴대폰 하나를 분실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개별적 사건이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어떤 천재적 기술자가 금융정보를 유출해 한 나라의 재정을 거들내거나, 휴대폰으로 치명적인 세균을 퍼뜨린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원시적인 자연인들은 정전의 고통을 모르거나 알아도 가벼운 불편이겠지만 문명인들은 고통이 극심하고 활동이 중지되고 공황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전 경험이 사유에 탄력을 준다 정전은 문명의 이면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불 켜지 않는 날을 정해볼까?
법정스님의 산골 오두막살이처럼........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진정한 자유인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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