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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동문회 몇 시간 전

오늘은 북상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있는 날이다
경향 각지에 있는 동문들이 이 날을 기다려 고향을 찾아온다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하는 이들의 의식 저변에는 귀향에 대한 동경이다
고향으로 귀의한다는 것은 실거주지를 옮긴다는 좁은 의미만이 아니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넓은 의미도 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세계에 우연히 던져진 피투된 존재로서의 내가 이곳에서 이 친구들과의 만남은 놀라운 인연이 작용하고 있다
학교 옆의 숲은 소나무와 굴밤나무 고목이 울창하고 그  우듬지에 황새라고 믿었던 왜가리들이 상주하고 당시에는 두 개의 정각들이 있는 삼각주는 우리들의 정서를 기르는 최고의 자연의 학교였다
농촌이라 당시에는 군내에서 비교적 소규모 학교라 북상 촌놈이라는 읍내 아이들의 조롱이 싫지 않았었다
그래도 우리가 재학 중에는 전교생이 5백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20명 남짓이고 교원은 열 분이라니 세대 변화에 한숨이 나온다
우리는 6년 내내 한 반이었다 요즘 학급으로 치면 세 반이 될 인원이 한 반의 콩나물 시루에서 공부하며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은사님은 몇해 전에 세상을 뜨시고  친구들도 일부는 고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아갈수록 어린 시절의 추억은 생생하게 고착되며 그리움을 더해간다
아직 철들지 않은 소년 시절은 가난하고 모든 생활조건이 열악했지만 세파에 물들지 않은 순진무구함이 있었다

추억은 휘장 속에 드리워지고 쓰디쓴 것들마저 아름답게 포장되고 넉살 웃음으로 승화되며 벗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추억은 동기들만이 아니라 마을이나 학교의 선후배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보상 받으려 한다

아침 일찍 친구들에게 꼭 오라며 총무의 메시지를 보낸다 어디에서는 몇이 온다며 서로 연락을 취하며 친구들을 만날 기대감에 모처럼 설렌다
이 설렘은 이미 내가 소년 시절의 순수함을 아직도 일부나마 간직하고 있다는 마음의 징표임이 확실하다


곧 모교에 가면 반가움으로 환해진 친구들이 손을 맞잡고 흔들거나 어깨를 툭 치거나 엉덩이에 발길질로 스스럼 없는 관계를 드러내며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탄성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상스러운 말들조차도 정겨워지는 희한한 마법이 생길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로를 가시나 머슴아라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해질 녁의 여흥시간에는 추억의 포만감에 흥이 올라 체면치레할 필요도 없이 막춤으로 격정을 토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걸칠 옷을 고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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