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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간밤의 비는 멎고

간밤에 내내 내리던 비가 멎고 아침 햇빛이 강렬하다
구름과 태양, 어둠과 빛, 음과 양이 세력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분투한다
어제는 구름떼들이 태양 주변에 몇 겹으로 장막을 치고 비를 뿌리더니 잠시 뒤로 물러나며 소강 상태인데 곧 반격을 가할 예정이라며 천기가 매우 불안정하다
천기는 살아서 숨 쉬듯이 안정과 불안정을 거듭하지만 궁극적인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아침에 밭에 나가는데는 미묘한 이유가 있다 비를 맞아 잎들이 활개를 치듯이 원기왕성한 모습을 보며 어제나 그제의 이전과 다른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차이론은 내가 전원생활을 하며 지루하거나 사소한 풍경에 집중하고 예민하고 섬세한 관찰을 하는 근원이 된다
지금 지각하고 있는 것을 이전의 지각과의 차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외형적인 크기와 변화, 색깔 등이 일정하지 않고 유동적인데서 생기는 것이다
옥수수는 어제보다 반뼘은 더 키를 돋우고, 들깨 씨 부은 두둑은 어제보다 빈 공간이 줄어들고, 고구마는 새순이 고랑으로 뻗어나가고, 호박은 몇 송이의 꽃을 피우며 영토를 확장하기 바쁘다
변화와 차이를 확인하며 결실로 가는 섬세한 과정을 생명작용에 동참하는 기쁨으로 누리는 것이다

들깨를 심으려고 밭을 비워 두었는데 장마가 드니 여러 풀들이 경쟁하듯이 빈 땅을 점령하여 난장판이다
대자연은 간택하거나 가지런하지 않는 법이다
제초제로 죽이거나 비닐을 덮어서 자랄 공간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인간의 이득을 위한 일이라 풀의 입장에서는 폭압적 횡포다
농사를 짓는 행위 자체가 도의 관점으로 보면 그렇다
비워둔 밭에 마구잡이로 터를 잡은 풀들에 먹거리가 있다  
참비름, 명아주, 들깨순들을 한 줌 넉넉히 따서 손질하여 데쳐놓는다
오늘 점심은 이 나물부침과 오이 한 개만으로도 밥상이 어제와 조금 다른 차이가 있어 즐겁다

마트에 가서 잘 손질하여 포장을 한 채소를 사는 사람은 모른다 1000원짜리 오이의 열매 한 개를 소비할 뿐이다 오이밭에서 가꾸는 사람은 다르다
오이의 모종이 단비를 맞아  새 잎을 내고 노오란 꽃을 피우며 벌들이 꿀을 따고 수정이 되며 꽃이 허물어진 자리에서 눈꼽만하게 오이가 자라서 불과 며칠만에 한 뼘도 넘거 자라는 기적 같은 변화는 관심과 사랑과 땀을 바친 농부에게 주어지는 노작의 기쁨이고 그 내면의 희열감은 사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다
내 점심 반찬으로 오른 오이나 나물 무침은 음식이기도 하지만 관심과 땀으로 이루어진 존재의 과정이고 삶의 결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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