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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아로니아 손질을 하며

아로니아 얼매를 생과로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한다
열매에 달린 잔 가지들을 떼내며 장갑을 끼지 않는 것은 열매의 단단한 감촉과 분리되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고 손가락이 보라빛 물로 채색되는 것을 직접 느꺼보기 위한 것이다
바깥의 기온이 매우 높지만 그늘에 앉으니 할만 하다
위트니 휴스턴의 팝송이 노동과 유희의 경계를 허문다
언제든지 하기 실으면 그만 둘 수 있지만 이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일을 하다보면 사유의 선물이 툭뚝 떨어진다 한가함에서 오는 여유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삶의 편린들에 애착이 간다 살아있는 현재의 삶이 주는 생기에 의한 것이다
잠시 스쳐가지만 포착하여 한 줄이라도 남겨두는 습관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이런 일을 할 때마다 고역이었다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여 잠시만 있으면 좀이 쑤셔 자리를 벗아나고 싶었지만 인내를 가르치는 뜻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그 때는 하는 지금보다 단순하고 협소한 가치의 지평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저 부모님 일손을 돕거나 순종하였던 것이다
어른들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는 일 자체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일 자체에 접속할 수 있는 다양하고 폭 넓은 코드와 관점을 갖지 못해서다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세계와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이 달라졌고 삶의 소중한 경험이 연륜에 배어들었다
우선 이런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억지로 하는 고역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만들고 일 자체를 즐기게 된다 그리고를  의미 부여를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에서 의미있는 일로 변화 시킨다
한 알의 열매 속에 담긴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 밭에 쏟은 내 땀방울과 자연의 은혜를 떠올린다
그리고 소소한 것 같지만 일상 속에서 발견하고 깨우쳐 가는 정신적 자기 계발과 성장에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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