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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제피 열매를 내다팔기

난생 처음 농작물을 팔러 읍내에 나간다
언젠가 누군가의 말이 소환된다
'이 사람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재주가 뭔지 아는가?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빼내는 재주라네'
나는 오늘 상인의 호주머니에 꼭꼭 숨은 돈을 빼려고 하니 첫 경험이라 긴장되고 살짝 흥분된다
제피 가지에 돋은 가시에 찔리지 않게, 사다리 위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한 손으로 가지를 잡아 당기고 다른 손으로 따는 본능에 숨은 기술력이 동원된다
상인의 호주머니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땀을 훔치며 단조로운 작업을 인내하는 노고가 기본이다
제피 큰 잎은 일일이 가려내고 선풍기로 잔 잎을 날리니잔 손질을 훨씬 덜어준다


난생 처음 농작물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사를 성공했다  
아내와 흥분된 느낌을 주고받으며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

제피 열매를 수집상에 가져가니 kg당 27,000원이라며 6kg치를 현찰로 계산해 준다 올해는 집집마다 제피가 많이 달려 가격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나는 횡재를 한 기분이다
나무에 물 한 번 주지 않고 거름 한 삽 준 일도 없이 그저 따기만 했는데 거금을 얻은 것이다
횡재한 것을 모처럼 탕진하자며 모처럼의 합의를 끝내고 수퍼마켓으로 향한다
제피 열매가 우유 몇 통, 음료수 몇 병, 깐 호두 몇 통 등으로 변신한다
시장경제의 마술이다

남은 돈은 햇볕과 바람을 주신 분께 돌려드려야 한다며 횡재금을 가로채려고 완강한 저항을 하는 아내에게 몸 수색을 하듯 장난을 치다가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손에서 제피향이 아직도 알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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