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전보여 바이바이

KT의 전보 서비스가 138년만에 종료된다는 소식을 보고 여러 생각들이 스쳐간다 엄청나게 빠른 통신 환경의 변화가 내 생애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이 든다

전보는 원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긴급히 소식을 전하는 당시로서는  최선의 수단이었다
무선전화가 나오기 이전이라 먼 곳에 있는 급한 소식을 전하자면 발신자가 우체국에 가서 가장 간단한 문장을 전하면 수신자 인근의 우체국에 점과 선으로 된 모르스 부호로 전신을 보내고 그것을 받아 우체국 직원이 수신자에게 직접 전달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전보는 부모의 위독함을 알려 임종할 수 있게 하거나 장례에 참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전보를 전하는 체신부 직원이 오면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학 시절의 어느 야밤에 내게 전보 한 통이 배달되고 나는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었다
<모친 위독 급래> 
충격으로  반세기에 가까운 지금도 여섯 글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 날 오전에 집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데 친구 몇이서 웃음 반 미안함 반으로 나를 맞이한다 가짜 소식으로 축구시합에 선수로 부른 것이었다 치기어린 초청이었는데 속은 분한 마음보다 어머니가 안전하다는 생각에 웃고 넘어갔다

전보를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넣은 것은 통신 메일과 무선 전화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세계에서 구식의 전보는 생존할 틈이 없어서 결국은 박물관이나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통신 기술, 통신 시장의 변화는 문명의 진보에 엄청난 역할을 해 왔고 또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아스라한 전보의 기억들이 그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전보에게 전보 한 통을 보내볼까 한다

138년간 온갖 소식을 전하느라 애 쓴 전보가 미이라로 역사의 장에 안치되다 잘 가시오 전보

발신일: 2023.11.16 10:25
수신자: 전보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림의 고수들의 결투를 보며  (0) 2023.12.15
통영의 밤길 산책  (1) 2023.12.15
슈퍼블루문  (0) 2023.08.31
제피 열매를 내다팔기  (0) 2023.08.27
사진단상(3)  (0) 2023.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