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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통영의 밤길 산책

통영을 미항이라 하며 유혹하는 말의 근거를 찾으려 밤길을 나선다
동행들을 떠나 홀로 산책을 한다
이 홀가분한 자유로 내 발 길을 제약하는 것이 없다

이 바다는 통영의 굴곡진 품을 파고들어 낮은 곳을 채운다
바다의 수면은 평평하고 고르다 여기서는 높낮이의 차이와 분별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대동을 이루려 바다는 밤새 출렁이며 균형을 이루는 것일까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으려 도마 위의 요정처럼 바다는 치열한 균형을 잡는다
수면이 고르므로 바다는 거울이 된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는 통영은 요부다 울긋불긋한 색조와 립스틱으로 짙게 바르고 야밤의 이방인을 유혹한다
이 밤의 정취에 취해 보세요 출렁거리는 물결을 오색 불빛이 타고 춤을 추는구나
이 항구는 바다를 품은듯한 포란형이다 旅愁는 일부만 제외하고는  두 팔로 감싼듯 뭍과 물의 가장자리에 만들어진 산책로다
맞은 편 항구의 불빛에 드리운 환상과 호기심은 여행자의 프리미엄이다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아련한 조명의 효과다
때로는 여수(旅愁)로 때로는 충동과 유혹을 부채질 하는 것이다

이 항구의 거리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람들의 지갑을 노리는 호객의 빛이다
여길 보세요 이 청정 바다에서 건져올린 수산물로 대접해 드린답니다 오늘 밤은 어디서 머무시나요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흐르는 커피향에 정감있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나요 한 잔 술로 여행의 흥을 돋우고 싶으신가요
조도 높은 불빛에 몰려드는 어군처럼 돈을 노리는 불빛은 갈수록 요부처럼 섹시해진다
이 도시에 지갑이 두툼한 여행객들을 유인하자면 가장 우선적인 것은 역시 먹고 마시는 원초적 욕구를 흥건히 적셔주는 것이겠다
붉은 아가미 틈으로 숨을 몰아쉬는 시장의 생선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분투하며 새 요리와 홍보로 문턱이 반질반질한 식당이 이 도시의 새 추억을 만든다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다
이 도시의 맛보기에 포로가 된 여행자들은 오늘의 이 흥을 재현하고 싶어 고단한 직장의 수고를 보상 받으며 스스로  재림을 기약한다

아!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대학 입학 50주년이 되어 동행한 벗들의 유쾌한 대화가 있는 공동의 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 틈에서 빠져나와 한두 시간을 낭만과 사유의 산책으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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