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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강설한담降雪閑談

이틀 전까지 많은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눈으로 변신해서 내리기 시작한다 고기압의 영향이라는데 기온이 급강하하여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란다
직장에 출근하는 이들이야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눈발이 춥고 귀찮겠지만 음풍농월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겨울답다며 엄동의 맛을 느껴보기로 한다

변신의 귀재랄까 천지간의 이치를 통달한 마법사랄까 눈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변신이 자유자재다  지금은 백설이지만 한 시절은 어느 깊은 계곡의 계류었으며 승천하여 구름이 되어 떠 있기도 하니 형상과 색을 초월한 것은 분명하다

세설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창공을 흐른다  한낮이라 아직은 몸집을 불리지 않아 강하하는 걸음이 유연하고 발랄하다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추락하지 않고 사선으로 때로는 횡으로 급한 바람결에는 솟구치기도 하며 내려오는 입춤의 명인들이다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부는대로 제 몸을 맡기는 대자연의 흥겨운 춤이다

눈발아 더 몸집을 키우며 기세를 올려라 창공을 네 분신으로 가득 채우며 지상세계를뒤덮으며 신천지를 만들어 보아라 지상에 솟구친 나무의 우듬지부터 시작해 지붕, 장독, 들판을 죄다 덮어라
사람들의 길을 덮어 익숙한 일상을 흔들어라

백설의 매직을 기획한 천상의 쇼를 한바탕 펼쳐보아라
온 세계의 개별 사물들의 형체를 지우고 색깔을 지우고 오로지 공으로 충만케 하여라 가득 참으로써 비어있는 역설의 진리를 선포하여라 제행무상의 진리를 선포하여라

길을 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지우는 천도의 본보기를 보여주어라

어른이 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어린이로 되돌아가 시작과 초심을 일깨우는 축복의성사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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