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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장모님의 항나무

처가의 현관 앞 향나무가 무성히 자라 지붕을 덮고 그늘이 져서 전정을 하려고 했지만 장모님이 허락을 하지 않아 미루어 오던 일을 이번에 감행한다
요즘은 몸져 누워 있으니 예전에 비해 기운이 약해진 틈을 이용한 것이다

'아이구 허리야!'를 요즘 입에 달고 사는 장모님이 두 딸 내외가 바깥에서 일을 하는 걸 그냥 두나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비리의 현장을 적발한 것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허락도 없이 저희들끼리 하는 일이 못마땅하여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이 집안의 성주나 다름없는 당신의 주권을 건드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날도 저문데 이제 그만 하라며 의욕이 넘치는 사위의 선의는 안중에도 없다
장모님은 정원수라는 개념보다는 자연수라는 생각을 하신다 나무는 자연적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지 인공으로 가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나무를 아름답게 가꾼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 나무는 장인 어른께서 심은 나무라 고인과의 추억의 상징물로 여기시나 보다

자식들은 고집불통인 어머니가 못마땅하지만 노년의 아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늙어갈수록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행사할 수 있는 자유와권리가 축소되어 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경제력이 전무하거나 부족한데다 장성한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여 생기는 무능력과 고루함과 부적응으로 부정적 자아감에 빠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순종적이던자식이 이견을 내세우며 접촉의 기회가 줄어들어 소외와 외로움에 젖어드는 수가 잦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에 몇 가지를 잘라 볕도 조금 들게 되었지만향나무 고목의 멋스런 수형을 잡기에는 시기상조다

나는 장인 어른께서 손수 심은 나무라 수형을 잘 잡아서 후손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로 만들어 보고 싶지만 실권자인 장모님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처지다
일단은 작전상의 후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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