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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지게를 지며

뒷산에 가서 낙엽과 부엽토를 긁어와 퇴비를 만드는 일이 며칠 째 지속된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자연적인 농경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좋은 봄날에 자연인답게 일을 하면 즐거움과 보람이 적지 않다
일을 해도 악착 같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놀이처럼 즐기라는 것이 내 생활 철학이다
일의 목표가 돈벌이라면 이건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일은 고역이 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일의 과정을 즐겨야 한다

오늘은 지게를 지고 가서 마대에 가득 담아와야겠다
몇 해 전에 구입해 놓은 알루미늄 지게가 가볍고 편리하다
'요새 지게질 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웃을 일이기도 하다
지게질을 예전의 농부나 초부(나뭇꾼)들의 노동을 체험하고 추억하는 낭만적인 동기가 있는 것이다

큰 마대자루에 꾹꾹 눌러 가득 담아도 그리 무겁지도 않다
아들이 선물한 이어폰으로 즉흥환상곡을 들으며 서정을 즐긴다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해보다 팔년을 더 살고 있는 나다
아버지가 산에서 바싹 마른 솔잎들을 긁어 모아서 지게에 한가득 짊어지고 와서 부엌 입구에 내려 놓을 때 어머니의 기뻐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다
예전에 아버지가 지게질할 때 사용하는 작대기를 찾아 내가 전해주려고 하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나무라듯이 뺏던 아스라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는 직접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어린 나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지게질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소박한 생각에 미소가 번져온다
이 지게질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가 퇴행적이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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