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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설날 하루 전

설이라고 같은 설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설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다림의 과정이 있었다 손가락을 꼽으며 하루하루 클라이막스에 다가가는 순수함이 축제를 완성 시키는 동력이었다

우리는 당일의 축제를 위해 배가 고팠고 헐벗었고 외로운 날들을 견디며 꿈을 꾸었다
몇 번의 5일 대목장을 보며 설치레를 마련하였던가!
고무 내음이 향기로 다가오던 검정 운동화, 신발끈을 매는 구멍이 많아서 가슴이 부풀었고 축제날까지 신지 않고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빛 바랜 추억을 회상한다
축제를 위한 희생 제물인 돼지의 목 따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고 버스가 귀향객을 하나 둘 내려놓을 때마다 고개를 쭈욱 빼고 환희와 실망이 교차했었다
그 시절의 설은 주린 배를 채우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조상들께 제사 지내고 일가친척들과 만나고 고향의 품에 안기던 풍요와 화합의 축제였다

원단은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은 기쁨과 설렘의 축제요
그 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도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합니다> 라는  덕담의 이면에는 예기치 못하는 액이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설을 신일愼日이라고도 하였던 맥락이다  근신하며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란 뜻이다
하늘 높이 띄워 올리는 연에는 놀이와 기도가 담겨있다
온갖 액을 막는다는 주술과 놀이가 결합된다
신일에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새 옷을 차려입고 조상님과 어른들께 지극한 예를 다하였다

오늘 섣달 그믐날 밤에는 밤새도록 불을 켜놓고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를 경건하게 맞아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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