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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설과 세뱃돈

설을 쇠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현재의 나를 서글프게 한다
반 세기의 세월이 초래한 변화에 당황하고 놀라고 경이롭기도 하다

만성적 빈곤이 오히려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지만 명절의 풍요를 체감하게 해주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회지로 나간 사람들이 가족 친지들과 고향으로 일시 귀향하며 돈벌이에 내몰렸던 외로움과 서러움을 보상 받으려 했다
자신이 속한 근원적 공동체에 자신의 성과나 성취를 내보이며 인간적 충족감을 누리고 싶어했다
고급 세단 자가용을 타고 선물을 한가득 싣고 마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고 싶었던 충동이 강했다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최소한의 의무로 명절 귀향을 함으로써 남들의 조롱이나 비난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 세기 이 쪽과 저 쪽을 비교해 보게 된다
예전의 명절이 사막의 빈곤에서 벗어나 목을 적시는 잠깐의 오아시스였다면 지금의 명절은 일에서 해방되어 여행이나 소비의 향락을 즐기는 페스티벌과 유사한 것 같다
예전의 명절이 조상과 후손,일가친지와 마을 사람들이함께 누리는 공동체의 축제였다면 지금의 명절은 개인적 자유를 누리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연휴는 직장인들의 시간의 오아시스다 아무리 자유와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라지만 생산을 위한 직장의 규율과 효율성 위주의 체계에서 근로자들은 개성이나 자율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런 합리적 예속 상태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시간은 퇴근 후의 시간이다
눌렸던 자유와 개성은 주로 소비생활을 통해서 위안과 보상을 받는다
이런 자유와 낭만의 연휴에  귀성객들로 고속도로만이 붐비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공항도 붐빈다

설날의 세배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은 습속이다 웃어른들을 공경하는 장유유서, 상경하애 경로효친의 전통사상이 단적으로 녹아있는 의례다
예전에는 세배의 대상이 마을 어른들 까지 확대되었는데 지금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런데 참 아쉬운 점은 요 세배 본래의 정신이 퇴색하여 변질된다는 느낌이다
손주의 세배를 받는 조부모가 약간의 세뱃돈을 주는 관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지나침이 늘 문제가 된다 세뱃돈은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지만 과도해서는 안된다
세배를 하는 아이들이 세뱃돈을 바라고 한다면 잘못이며 그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세뱃돈이 아이들을 자본주의 사회에 순치 시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개운치 않다

왜 하필 세뱃돈인가?
세배하는 손주들에게 맞춤형 덕담은 어떨까?
덕담은 의례적이거나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개체의 특성이 담긴 구체적인 내용이면 좋을 것이다

우리 00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내가 기쁘단다 네가 자라서 훌륭한 문필가가 되면 좋겠구나
너한테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선물한다

우리 00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좋아한단다 진실로 좋은 벗은 보물보다 가치있는 법이지
할아버지가 쓴 우정이란 글이 네 세배에 대한 답례품이란다


이런 상상을 하는 걸 보면 내 마음의 한 켠에 아쉬운 마음이 있나보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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