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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수선하는 손길

비싼 새 옷을 받을 때보다 헌옷을 수선하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정감이 가고 사랑스럽다
생활용품이 귀하던 예전에는 그런 풍경이 일상이 되었는데 지금은 좀체 보기 어렵다
60년대 재래시장의 고무신 수선공, 양말을 깁던 어머니, 헐거워진 팬티에 고무줄을 넣는 아내, 도끼 자루를 갈아 끼우는 나, 도심의 구두 수선공.....

수선은 기능을 회복하는 치유의 손길이다 사람의 의지와 정성으로 손이 만들어내는 재활의 과정이다
수선으로 도구는 생명이 연장된다

오늘날의 과잉 소비시대에 수선은 애물단지처럼 천대를 받으니 딱할노릇이다
산업자본가들의 눈으로 보면 신상품 판매 전략을 방해하는 낡아빠진 수법이라 달갑지 않다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사물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망각하고 단지 피상적으로 나타나는 사용성으로만 사물을 대하게 된다
나는 선친의 손대패 한 개를 유품으로 보관하고 있다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손길을 상상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로 버리지 못한다

수선의 손길에 희색을 띄며 반기는 지구다
착취와 혹사에 신음하는 지구의 지체들이다
수선은 쓰레기로 전락할 물건의 생명을 연장 시킨다
아껴 쓰고 고쳐 쓰고 나누어 쓰는 삶의 지혜를 낡아빠진 구시대 논리로 폄훼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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