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블로그에 뜬 기사 하나 손흥민은 연봉이 얼마지?
세인들은 이런 기사에 호기심과 관심을 집중 시킨다 그들의 일상 대화는 돈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연봉이 174억원이고 주급으로는 3억4천만원이란다 주급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의사의 연봉과 비슷하다며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우리 사회의 최소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월 200만원 급여의 17년치와 같다
그 선수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시기해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충분하다고 여기며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자못 못마땅한 것이 있다 그 선수의 능력을 오로지 연봉이란 액수로 평가하는 자본주의식 단일 준거다 이 기준이 여타의 다른 준거를 블랙홀처럼 포획하는 괴물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논리를 단순화하면 한 마디로 손 선수는 174억원짜리라는 것이다
그 선수의 인성이나 리더십,애국심 등과 같은 것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데도 획일적인 연봉만으로 값어치를 매긴다
이 시장은 무한한 자유경쟁과 시장경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손흥민은 이 시장의 보석으로 명품으로 대접을 받는 월드스타로 거론되는 것 자체로도 영광인 사례지만 자유경쟁에서 탈락되어 꿈을 접은 선수는 수천, 수만 배에 이른다
이들의 눈물은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단면이다

독일계 미국철학자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1964년에 <일차원적인 인간 One- Dimensional Man>이란 저서를 편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체제에 순응하여 무비판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기술발전으로 인류에게 엄청난 부와 편리를 제공함으로써 대중들을 마치 자본주의교의 신도처럼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체제에 의문을 가지고 저항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순응하면서도 자유를 누린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을 소비의 꿀맛에 길들인다 그러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짓 욕구를 주입 시킨다
생존과 생활에 꼭 필요한 욕구가 아닌데도 허영과 환상을 자극하여 소비에 몰입하도록 선전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첨단의 기기인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활용하여 자본주의에 동화되고 과장하면 세뇌되도록 하고 있다

동화 속의 알라딘의 마술램프는 문지르기만 하면 되었다 거인 지니가 나타나 "주인님 말씀만 하세요 다 이루어드릴께요"
현대사회에서는 마술램프가 진화되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 매끈한 액정을부드럽게 밀거나 가벼운 탭만으로도 수많은 요정들이 나타나 온갖 소원을 들어준다
이런 자본주의의 위력적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풍요와 번영을 맛본 신도들이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를 제공하며 억압의 본질을 숨기고 기존 체제에 만족한다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소비의 자유에 국한되며 그 자유를 위해 생산과정에서 노예적인 상태를 감내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고를 억압하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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