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곡의 글방

농산리 지암대의 서사

접근이 어려워 장면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다

농산리 마을 앞에는 고인돌 하나(원래 논에 있던 것을 몇 미터 옆으로 옮겨 놓았다)가 있고 그 아래 기연들이라 부르는 깊은 소가 있다 아득한 전설이 스며있을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부서진 것인지 거대한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고 예전의 느티나무 노거수 한 그루는 세월에 자취를 잃었지만 후손으로 추정되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농산리 청동기시대 고인돌

한 바위에 강한 애착이 솟아난다
소년 시절에 소에 뛰어내리는 자리인데, 용감한 소년들만이 설 수 있는 바위였다
다른 자리도 몇 군데 있지만 이 지점이 소년의 영웅적 호기를 불러일으키는 난코스였다 당시에는 머리부터 입수하는 다이빙 기술을 배우지 못해 발부터 입수했지만 뛰어내린 후에 스스로 용사처럼 당당히 가슴을 펴고 소심한 아이들 앞에서는 우쭐거리기도 했다

언젠가 보니까 그 바위에 지암대란 한자를 음각해 놓았다 그 분은 정기준 님이다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뼈를 해인정 인근의 문중 송림에 봉분없이 묻히신 방계 할아버지다 가장 가까운 공동조상은 16세 덕양 (정유필) 조부님인데 정기준 할아버지의 4대 조부이고 나의 6대 조부님이니 촌수는 10촌이다

나는 그 조부님을 대면한 기억이 없고 다만 본부인인 유기순(진산 할머니)할머니가 우리 옛집에서 큰 댁 한 집을 건너 일본식 가옥에 거주하며 일가의 정을 나누었다 두 분의 따님인 정정희 아주머니는 일본에서 유학하다 해방 후 돌아오실 때 머리에 빨간 염색을 한 대졸의 엘리트라 읍내 청년들이 구경을 올 정도였다고 한다 모두 다 돌아가시고 아주머니의 큰 딸인 민성혜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라 아련한 추억이 있고 아들인 민경하는 대학 교수였다는 소식만 들었다 두 남매가 이런 사실을 알고 현지를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인연이 닿을지는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들이 와서 새겨진 글씨에 담긴 외조부의 향토애와 뻐를 묻기 위해 귀향한 말년의 심정을 헤아리면 좋으련만.....

지암대(支岩臺)라 지암대라.......
이곳을 지암대라 칭하고 영구적으로 기념하는 본의를 궁금히 여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기연들이란 명칭과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고인돌, 괸돌, 기인돌, 기연들로 음운이 변화된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면 지암대의 의미가 바위를 고인 곳이 된다
글씨를 새긴 저 바위는 다른 바위가 밑을 고이고 있어 들려진 상태다 어릴 적 저 바위를 수없
이 오르내려 확실히 알고 있다

지암대 세 글자에 담긴 의미와 한 가정의 서사를 돌아보며 옛 추억에 잠긴다

'청곡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 - 창백한 푸른 점  (0) 2026.01.04
새해 인사  (1) 2026.01.01
골동품 화롯가에서  (0) 2025.12.30
수달래를 품은 바위  (1) 2025.12.28
바둑의 신선을 뽑는다고?  (1) 202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