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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수줍음의 윤리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해 본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몽우리는 꽃의 수줍음이다
한 순간에 요술을 부려 화려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첫 피어남으로 긴장과 조심스러움으로 찬란한 빛을 대면하는 수줍음이다
작고 연한 꽃잎이 오무린 채 서서히 잎을 펼쳐내는 기운에는 미약한 존재의 겸손이 배어있다
예전에 맞선을 보는 양가집 규수들은 목전의 도령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볼이 붉어지는 수줍음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꽃의 초심은 수줍음이다

전통 혼례를 올리는 신부는 수줍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수줍음이라는 무위의 윤리를 내세운다
하이데거는 말년에 자신에게 숙소를 제공한 마르셀 마티외라는 여인에게서 받은 느낌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녀의 고향인 프로방스의 광활한 풍경이 안주인을 기이한 수줍음으로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안주인은 요란하고 극성스러운 설명으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손님처럼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경청하였다는 것이다
대자연 앞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 처분할 수 없는 것, 어찌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머뭇거리며 겸허함으로 경청하는 태도를 수줍음의 윤리라고 한다
수줍음에 휩쌓인 사람은 자기 안의 타자에게 자기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수줍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여 우호적으로 수용한다 그리하여 귀 기울이기 즉 경청하는 태도로 드러난는 것이다

최영배 비오 신부님

수줍음을 말하다 보니 불현듯이 떠오르는 오래 전의 사건 하나가 부상한다
고령 들꽃마을을 수십 년 전에 방문했을 때 김영배 신부님의 말씀이다 그 분의 얼굴마저 가물가물하지만 허약한 몸으로 낮으막한 목소리로 짧게 나눈 몇 마디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무의탁자들의 보호자로 온갖 걱정 근심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서도  내일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씀 안에 담긴 깊은 신앙 고백이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사업에 자신은 그저 하찮은 보조자에 불과하다는 수줍음으로 다가왔었다

수줍음이 실종된 시대다
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방송 리포터들의 하이톤, 과장된 몸짓과 같은 것은 자기를 드러내 시청율을 높이려는 뻔한 속셈이라 수줍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어깨를 당당히 세우고 가슴을 펴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에게 수줍음이 들어설 틈이 없다
섣부른 자만과 권리의식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수줍음이 철 지난 과거의 도덕으로 비하된다

천사는 늘 수줍다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한 절대자 앞에서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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