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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병풍산을 물들이는 낙엽

 

 

앞 산에 타는듯 물드는 단풍이 손짓하며 유혹하고

시월의 얼마남지 않은 따사로운 볕이 등을 떠밀어

시내를 건너 앞산으로 향한다.

 

盛唐 시대의 詩佛로 유명한 王 維의 시 한편을

읊으며 가는 나는 제법 로맨틱하다.

 

공산에 인적 없고                         (空山不見人)

어디선가 인기척만 들리는데          (但聞 人語響)

깊은 숲 속에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返景入深林)

푸른 이끼 위로 조용히 비치누나.    (復照靑苔上)

 

 

내가 여름에 수영을 즐겨하는 沼

물 위에 어른거리는 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을 서정을 즐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沼에 이제는 산이 들어 앉았구나.

소슬바람이 불어오자 풍경이 파르르 흔들리는구나.

 

 

 

 

벼랑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가 진홍빛이다.

이제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라는 대자연의 법을 따르며

담쟁이는 치열했던 생장을 멈추고 아늑한 휴식으로 들어간다.

落照는 서산에 지는 태양에서만이 아니다.

무심한듯한 담쟁이 잎에서도

저렇게

장엄하게 연출되는데.............. 

 

 

 

 

 

빈 들판은 채우고 버리는 자연의 이치를 보여준다.

며칠 전까지 풍요롭던 결실을 미련없이 내주고

다시 空으로 돌아간다.

이 들판에는 이제 寂寞으로 충만할 것이다.

色卽是空이요, 空卽是色이로구나

 

 

 

 

여섯 폭 병풍을 두른듯한 가래올 앞 산에

한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나무들은 저마다 겨울채비에 접어들며

형형색색으로 단풍이 들어간다.

 

 

 

 

빈 들 한 켠에 앙증스럽게 핀 왕고들빼기

서쪽 하늘에 얼마 남지 않은 볕을 쪼며

벌 한마리와 이 가을을 노래한다.

 

 

 

 

젊음의 생명력으로 온 산을 푸르게 물들이던 단풍이었던가!

이제는 때가 되었네 이제는 쉬어야 하리라

푸름을 내려놓고 황혼에 물든다.

 

 

 

 

 

어젯밤 찬 이슬에 젖으면서도

싱싱한 생기를 잃지 않고 피었구나.

작고 귀엽지만 강한 의지의 화신이로구나.

구절초꽃이여!

 

 

 

 

이 냇가가 좋다네.

때로는 물처럼 물 속을 유영하고

때로는 바람처럼 유유자적하고

때로는 구름처럼 조감하고 싶어

 

 

 

우리 마을 뒷 산, 산 너머에는 병곡 마을

고도 600미터, 울창한 송림

산돼지 발자국, 고라니 켁켁거리는 소리,

물푸레나무 낙엽들의 소곤거림 , 참나무 우듬지에 걸린 달,

소쩍새 토하는 울음, 곤줄박이 경쾌한 비행, 어치 패거리들의 놀이터

그리고 내 낭만의 발자국이 스민 곳

이 모든 것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산골 마을 뒷산

 

 

 

 

깎아지른듯한 저 벼랑에 나는 오르지 못한다.

다만 담쟁이들이 기어 오르며

용기있는 나무들이 바위 틈에 자일을 박으며

벼랑의 친구가 되며 아름답게 물들인다.

 

 

 

 

함박꽃 나무 한그루를 어렵게 캔다.

아름다운 꽃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가자 가자 우리 뜰로 가자구나.

그대는 꽃을 피우고 나는 꽃을 노래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