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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아내의 돋보기

 

 

아내의 돋보기

 

눈을 뜨지 않아도

행복은 머리맡에 햇살처럼 퍼진다

팔 펴면 닿을 거리에

속삭임이 응답하는 거리에

그녀가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아도

행복이 온 방에 질펀하다

돋보기를 낀 아내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늦잠이 깨기 때문이다.

 

돋보기 너머 아내의 눈가에는

세월의 풍상을 디딘 의연함이 쌓여 있다.

세월의 무게에 눌린 흔적은 있어도

결코 초라하거나 궁상스럽지 않다.

 

늦배운 전각의 섬세한 획 하나에도

돋보기를 몇 번이나 고쳐 쓰는 모습엔

땡삐 같은 근성이 끈끈히 배어난다.

 

책 읽을 때는 내리깔고

책 밖을 볼 때는 치켜 떠는

돋보기 너머의 아내 눈가에는

이런 저런 세상 이치 두루 살피는

연륜의 지혜가 스며있다.

 

 

돋보기는 사랑의 징표로

역사의 흔적으로

눈에 낀 결혼 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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