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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00 기준

 

 

"00기준! 양팔간격으로 벌려!"

“저 앞에 나무까지 선착순 0 

 

 

체육 선생님은 매우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를 통제했다.

선착순을 시키기도 했다.

요행으로 기준이 된 친구는 히죽 웃으면서 제자리에서 손만 올리면 되는데

기준에서 먼 지점에 있는 친구들은 불평할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기준점을 설정해서

반복했기 때문에 자욱한 먼지에 갇힌 숨소리는 거칠어져 갔다.

 

 

                 

 

졸업을 한 후에도 기준은 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정치인이, 聖人성인마저도 그랬다.

 

대학을 가고, 직장을 선택하고, 주택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는 일들이

모두 기준을 정하고 줄을 세우는 일이었다.

수많은 기준을 만들고 끝없이 기준을 향해 가도록 채근했다.

 

어찌나 교묘한지 권유, 성화, 회유, 명령이 차츰 동화로 교과서로 노래와 춤으로

종교로 이데올르기로 법과 제도로 옭아매는 판이었다.

 

이제 기준이 삶의 중심에, 세상 한복판에 떡 버티고 서서 우상이 되었다.

일상이 무릎을 꿇고 사람들이 조아리며 섬기는 우상이 되었다.

 

 

 

기준이 생기니 구분이 생기고, 차별이 생겨난다.

이 쪽과 저 쪽이 나누어지고 강자와 약자가 생긴다.

중심의 집중과 주변의 소외가 생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배제하고 억압하여 갈등과 다툼이 생겨나고 세상은 이제 평화롭지 않다,

기준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허둥지둥, 헐레벌떡 거린다.

뒤쳐진 그들은 늘 소외되고 불행하다.

 

 

 

 

취화선’- 궁중 화백이 되어 강요된 그림에 절망한 오원은 꿀단지를 차 버리고 탈출한다.

나는 저기에 있는 기준, 목표, 이상을 위해 여기의 일상을 핍박받지 않으리라.

불확실한 내일, 미래를 위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라고?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히 증거하는 욕구들을 희생하라고?

우리를 위해 나를 버리라고?

 

<안돼 안돼 그것은 안돼 안돼>

 

 

 

 

 

나무를 자귀질하고 사포질하는 일은 

 

돈으로부터 해방된 일이기에

며칠까지 몇 개를 만드는 목표로부터 자유로운 일이기에

어떤 기법으로, 누구처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도 경쟁도 없는 일이기에

<기준>을 가리키던 체육선생님의 손가락으로부터 해방된 일이기에

 

 

 

 

우상에 돌 한개를 집어 던진 후

어쭙잖은 공방으로 간다. 

 

노래 한가락 부른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