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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이보게! 우리 화가 날 때는........

 

이보게.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네.

일그러진 모습은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아.

제 멋대로 굴고, 자제력 없는 폭발력에, 오만 방자하고, 유치하고, 감사라고는 모르는

화의 유령이 내 얼굴에 덧씌워진 모습을 보고 놀랍고 부끄러웠다네.

 

 

그런 후에 심호흡을 하며 화로 가득 찼던 허파의 구석구석에 스몄던

화기를 배출하고 신선한 기운을 받아들인다네.

자네도 화가 나거든 이 방법을 사용해 보게.

 

 

 

                                         

 

 

화에 대해서 나는 세네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네.

화를 일으키는 원인 중의 하나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감이라는군.

나는 세상이 마치 나를 특별한 존재로 떠받들거나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라는

퇴행적 기대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네.

그런 기대의 덫을 내가 설치하고 내가 걸려든 것이지.

낙관적인 기대는 세상을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무지개빛 환영이라네.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 수준을 낮추고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세네카의 조언이라네.

나는 스토아 철학자들을 늘 존경하고 모범으로 삼는다네.

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냉철한 이성으로 바라보라고 한다네.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서 예상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하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예상치 못한 비극적 상황에서도 회복 탄력성이 생기는 것이지.

 

 

 

 

 

어제와 오늘은 봄비가 대지를 흠뻑 적셔주는 생명수였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봄비에 대한 감사의 기도와 노랫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어쩌다가 가뭄이 들기라도 하면 원성은 그치지 않겠지?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이와 유사하지.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자신의 세상에 빚진 것에 대해서는 눈이 멀지.

비가 늘 일정하게 내려서 만물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에서 온 것이 아니던가?

 

 

 

                                       

 

 

이웃이 무례하게 행동하여 화가 나기도 한다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웃의 무례함은 나에게만 미치는 개인적 모욕감이 아니었고,

그 사람의 고치기 어려운 한계라는 생각이 들자 화가 깊어지지 않았다네.

그리고 이웃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듯이 나도 이웃을 화나게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나 나나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지닌 존재임을 인식하고 포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네.

내 모든 이웃이 예의 바르고 자제력 있기를 바라는 것도

나의 지나친 낙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네.

 

 

                                       

 

 

자네도 화를 잘 내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대한 화를 조금이라도 거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 평가나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라네.

 

이보게 친구.

화가 날 때는 심호흡에 시원한 물 한 잔 들이키고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적인 생각에 잠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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