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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비 오는 날의 단상

 

아침부터 낮은 구름이 드리우더니 실비가 내리고

우산을 쓰고 뜰을 소요하며 생각에 잠긴다.

 

비 오는 날은 음의 기운이 발동해서인지 육체적인 활동보다는

내면적인 세계로 침잠하여 정감어린 사색에 잠기게 된다.

 

 

 

 

 

지난번에 군데군데 심어놓은 감국 모종들이 비에 젖으며 원기를 더한다.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호미를 쥐고 어린 모종의 둘레를 득-득 긁으며 잡초를 제거한다.

MP-3 피아노의 투명한 음률이 이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용도를 바꾼 욕조에 어리연과 부레옥잠을 넣자 작은 연못이 되었다.

작은 빗방울의 낙하가 동심원을 그리며 파문이 된다.

비 오는 날은 그런 사소한 일마저 중대한 일상이 된다.

 

 

 

 

 

 

 

나는 이렇게 비 오는 날을 즐긴다.

비 오는 날은 새로운 기분으로 삶의 기쁨을 더하고 음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스쳐가는 단상 하나 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이런 풍경, 감미로운 일상의 여유 그 너머, 그 반대편을 생각한다.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먹는 이들에게는 비 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 아닌가.

비가 결코 아름다운 수채화가 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음풍농월일 뿐이리라.

 

 

 

 

여유로운 삶은 절박함을 상실하고 있다.

예전 시절, 많은 식솔들을 거느려야 하는 빈한한 가장의 책무를 생각해 본다.

식솔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려는 그 절박하고 간절한 염원은 얼마나 간절한 순수함인가?

절박함이란 많은 대안을 가지지 못한데서 오는 급박한 심정일 것이다.

믿고 기대고 의지하는 방편이 거의 없는 마당에 어찌 여유가 넘치고 낙천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버리고 비워야 하는 것이리라.

비록 자유 의지에 의해 능동적 적극적으로 그러지 못할지언정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그런 사람들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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