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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장마철의 공상

 

장마비가 내린다.

온갖 감언이설과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고집 센 아이의 울음처럼......

자제력을 잃은 빗방울이 나무 마루에 부딪혀 울음을 사방으로 튕기며 더욱 거세진다.

 

 

 

 

이럴 땐 그냥 내 버려 두는 게 상책이라며 태양은 천궁 속에 숨어버리고

새들은 등지에서 날개를 접고 체온을 모으며 머리를 파 묻었으리.

곧 집 주위로 물이 길을 내어 흐르다가 차츰 기세를 더할 것이다.

 

 

비야 비야! 그치지 말아라.

사흘 밤낮에도 굴복하지 말고 네 끈질긴 야성을 드러낼 지어다.

그러면 내 거처는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중의 작은 동굴이 되리라.

나는 그 안에 갇힌 눈이 큰 산짐승 한 마리가 될 것이니.

 

 

 

 

 

폭우야! 온 세상이 잠기도록 퍼부어라.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그러면 내 거처는 작은 섬이 되리라.

나는 그 무인도에 첫 발을 내디딘 인간이 되리라.

 

 

 

 

집 채 만한 파도여 봉기하라.

부유하는 모든 경박한 것을 전복하여라.

머무르는 모든 안일한 것들을 채찍질하여라.

사나운 혁명군의 함성을 내지르며 도도히 쓸어버려라.

내 안의 도시를 삼키고 문명의 끄나풀들을 끊어버려라.

 

 

 

 

그렇게 천지가 요동을 치고 고독마저 넋두리인양 사치인양

나 홀로, 온전하게 나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면

귀가 고요해지고 눈이 밝아진 그 때는 보일까.

참나가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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