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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어떤 날은

 

어떤 날은 낮에도 블라인드를 내리고 이불을 개지 않는다.

교교한 달빛이야 없지만 내 마음에 달 하나를 띄우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지 않아도 될 친구가 와서 벌렁 누워도 되게

방문을 조금만 열어둔다.

 

 

 

 

 

어떤 날은 서로 다른 색깔의 양말을 신으며 즐거워한다.

어떤 날은 가슴에 베개를 대고 엎드려서 하얀 종이에 낙서를 한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은 뇌리를 자극하여 흔들어댄다.

규칙적 일상에 억눌린 음밀(陰密)한 본능, 무의식, 충동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본다.

앨범에 꽂아두지 않은, 잊혀져가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가끔은 일탈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건전한 일탈은 지루한 삶에 활력을 주고 삶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늘 다니던 길에서 벗어나 보자.

늘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대해 보자.

늘 믿던 것에 의문을 제기해 보자.

 

오늘이 그런 날이면 좋겠다.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태엽 풀린 시계처럼 헐렁하고 둔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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