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훨씬 지난 이슥한 밤,
유혹인지 충동인지 모를 어떤 이끌림에 의해 뜰로 나선다.
손전등을 켜고 샅샅이 비추어 보는 습관적 행위는 일종의 강박증인 것인지.....
매일 밤 만나는 익숙한 풍경들은 찰칼찰칵 슬라이드처럼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고
새롭고 변화된 풍경에는 스포트 라이트가 비추어지고 클로즈업 되면서......
한 뼘이 훨씬 넘게 자라는 소나무 새 가지는 사춘기 소년처럼 푸르고 원기 왕성하다.
며칠 전 개화한 참나리는 도도하고 화려하다.
무심코 돌팍에 앉아 손전등을 끄자 재빨리 엄습해 오는 어둠은 블랙 홀이다.
가만히 숨을 모으자 반딧불이 하나가 깜빡깜빡 제 전등을 켜고 내 곁을 스쳐간다.
온 세상이 잠든 지금 이 순간에
내 곁에 다가온 생명체와의 조우(遭遇)
억겁의 무한 시간에서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우리들은 여기서 한 순간을 공유하는 두 행성이다.
둘은 그렇게 머리칼이 젖는다.
그 명멸하는 빛의 꼬불꼬불한 궤적이 끊기고
지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그리움처럼 다가오는 별들이
내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은하마다 천억 개의 별이 있다는
무한 공간에 던져진 나의 존재는 참으로 미미하다.
이 광활하고 신비한 우주는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형언키 어려운 허무와 고독과 불안이 스쳐간다.
반딧불이보다 희미한 어떤 지성의 빛이 내 안에서 깜빡거린다.
스토아학파는 우주를 하나의 통합된 지성이라고 했던가.
신성한 지성의 로고스가 물질 안에 울려 퍼지고 있으며
인간에게는 높은 주파수로 진동한다는 믿음은 나를 위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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