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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진눈깨비 내리는 날 엊그제 입춘이 지나가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백설의 옷이 젖고 눈이 퉁퉁 불어 있다 눈물을 털어내지 못해 무거워진 몸이라 곧바로 지상으로 낙하한다 여유가 없다 눈이 낙하산처럼 활개를 펴며 지상에 사뿐히 안착하지 못한다 창공을 딛고 하강하는 걸음과 걸음 사이의 엇박이 없다 입춤의 대가들만이 떼어놓을 수 있는 파격의 미학이 없다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부유하는 자유가 없다 목적의식에 억눌린 여유로움이다 오로지 피할 수 없는 중력에 추락한다 봄으로 가는 경계에서 다급해진 것인가! 입춘의 위력에 압박을 받는 것인가! 눈과 비의 겅겨가 모호하다 더보기
단풍나무를 자르고 창문 앞에 심었던 단풍나무를 자르기로 한 것은 앞산을 조망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다 내가 심고 내가 잘랐으니 변덕이요 무자비의 부덕이다 심을 땐 언제고 필요에 따라 잘라버리는 이 존재의 가벼움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굳이 변명을 늘어 놓는다면 나무가 크고 무성해져 시야를 가린다는 점과 옮기려니 너무 힘든다는 점이다 잘린 밑둥치가 나를 노려보며 원 망을 하는듯 하다 주돈이가 집안의 잡초를 방치해 연유를 물었더니 "내 뜻과 같기 때문이다"고 한 고사가 떠오른다 그 말을 화두로 삼았던 정호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면 그것은 불인(不仁)이라는 의서의 귀절을 발견하고 깨우침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돈이는 잡초까지도 자기 몸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차마 자를 수 없었던 성인의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어진 사람.. 더보기
야생과 애완 사이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눈 쌓인 산에서 뛰어놀다가 나를 보고는 놀라서 피하는데...... 저만치 뛰어가데니 습관적으로 멈추어 서서 확인을 한다 나도 모든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30여 미터쯤 되겠다 야생과 애완 사이의 안전 거리! 더보기
전신주 위 가지치기 전선주 위로 솟은 자작나무 가지치기를 하려고 한다 한전에 전화(123)를 하니 친절하게 접수해 준다 작업 일자와 시간을 잡아두었는데 오늘 작업팀이 현지를 사전에 방문한다 주택 진입로이자 밭가에 손가락만한 어린 묘목을 사서 심은 자작나무 다섯 그루다 15년쯤 되었는데 수고가 30미터는 되어 밭을 그늘지게 한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밭은 쓸모가 적어진다 나무가 어릴 때는 빨리 자라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불편해지니 사람의 마음이 한결 같지 않다 그래도 나무를 통째로 자르지 않는 것은 자작나무가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다 은색의 독특한 수피 창공으로 시원스레 뻗어가는 가지, 잎이 지닌 광택미 등으로 나무의 귀족 칭호를 받았으니 그 이름값을 한다 자작나무야 잘 자라는 네게 톱질을 해서 사뭇 미안하다만 앞으로도 늘 곁에 .. 더보기
한가한 시간의 여유 멍하니 격자창 밖을 바라보니 새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날다가 제 무게만큼 낮아지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기를 반복한다 창공의 호수에 던져진 조약돌이 수제비를 잘도 뜬다 더보기
난롯가에서 요 며칠 들어 혹한이 맹위를 떨친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난로에 재를 치우고 불을 피우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춥고 배 고픈 건 변방이고 서민들이다 가늘고 연약한 나뭇가지와 잎들은 영양의 공급도 차단되고 혹한의 매서움에 그대로 노출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혹한에 대비할 여력이 부족한 예전의 우리는 모두가 지독한 빈민이었고 온몸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몸을 감쌀 방한복은커녕 얇은 겉옷과 양말, 신발로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래도 한겨울에 얼음판을 다니며 놀이를 즐기던 건강한 유년시절이었다 어쩌다 엄한 선친의 꾸중으로 집에서 일시적이지만 쫒겨나면 겨울 들판의 군데군데 쌓아놓은 짚동의 품에 안겨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중2부터 자취를 하던 학창 시절에는 콧구멍만 한 방조차 따스하게 할 수 없어 .. 더보기
울타리 너머 주택의 울타리 바깥을 손질한다 손에는 두터운 장갑을 끼고 톱과 낫을 들고 발은 장화를 신고 일을 한도 겨울이 되어야 무성한 풀들이 죽고 짉덩굴도 잎이 떨어져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찔레나무는 여전히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다 팔로 주택을 감싸안은듯한 남서쪽 언덕은 여러 잡목들이 자라서 햇빛을 가리고 주택의 뒷쪽인 서북쪽은 대나무가 울타리 쪽으로 근접해서 자라니 갑갑하다 산골에서 살아가는 일은 내 주택 공간만이 아니라 외부의 공간들까지 손이 미쳐야 한다 도시의 아파트나 주택과는 달리 내 소유가 아닌 산자락이나 비경작지까지도 어느 정도 관리해야 할 수 밖에 없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라면 경계가 확실하고 성가신 잡풀들이 기승을 부릴 공간 자체가 없지만 이곳은 묵힌 땅이 많아서 가만 두었다가는 칡.. 더보기
대숲에서 거창읍에 있는 지인의 대나무 숲에서 일을 도와준다 200평이나 되는 밭을 점령한 대나무들을 제거하는 작업인데 오늘은 주택으로 뻗은 일부 대나무들을 잘라내는 일이다 흙돌담이 있고 대나무가 빼곡히 차 있으니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키가 족히 10미터가 넘는 대나무를 자르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속이 비어있어서 수공톱만으로도 자르는 일은 힘들지 않은데 문제는 자른 나무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키다리 대나무를 잘라 놓아도 대나무를 눕히고 방향을 돌려 하단부를 잡고 끌어내야 하는데 워낙 밀집한 공간이라 난처하다 일머리가 알려주는 해결책이다 그러자면 대나무를 몇 등분으로 잘라서 바깥으로 옮기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조금씩 공간이 생겨나니 대나무가 눕게 되고 끌어내기도 쉬워진다 빈 공간이 있으니 일이 쉬워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