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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엽서 은행잎들이 포도(鋪道)에 융단처럼 켜켜이 쌓이고 나는 걸음을 멈춘다. 아직 발길에 밟히거나 채이지 않은, 방금 배달된 엽서. 소년 시절에는 그 엽서를 책 속에 끼워 두곤 했었지. 내가 또 하나의 나에게 보낸 순수와 연정의 엽서였었지. 부채꼴을 오려 샛노랗게 칠한 엽서는 백지다. 엽.. 더보기
헛 참! 한 번은 무슨 뱃지를 단 말 싸움꾼 둘이서 언쟁을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각설하고 막판에 가서 언쟁이 고조되자 한 사람이 황당한 표정에 노기가 덜 풀린 음성으로 <헛 참>하자 상대방도 이에 질세라 부름뜬 사시의 눈에 더욱 큰 소리로 <헛 참 내....> 하며 상황이 종결되었는데.. 더보기
구천동 물길을 따라서 걷다(2) 구천동 계곡을 걷다보면 숨쉬고 피가 흐르는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유선(乳腺)이 산의 갈증과 허기를 달랜다. 산새들의 샘이 되고 초목들의 젖이 되어 산을 살리는 어머니다. 숱한 초목들, 새와 짐승들의 포근한 안식처에 흐르는 자비의 젖줄이다. 물은 제 형태를 고집하지 않으.. 더보기
구천동 물길을 따라서 걷다(1) 내가 구천동 산길을 오르는 까닭은 내려오기 위해서다. 내려오기 위해 올라야 한다는 철칙을 내 모르는 바가 아니고 오르는 길의 설렘과 낭만을 도외시하는 일도 아니지만 백련사에서부터 물길을 따라 아래로 걷는 길은 새로운 의미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오를 때는 길가에서 만나는 다.. 더보기
묵방산 베개 향기 구절초 베개향에 취하다 며칠 전 아껴두었던 국화 베개 한 쌍을 선물상자에서 꺼내 이불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오늘 우리 구절초 향기에 취해서 꿈결로 들어가자며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그녀는 둘 중에서 작은 것을 택해 연신 마른 구절초 향기를 맡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소녀 같다. .. 더보기
농월정 유람 예전에는 안의현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에 가면 농월정이란 눈맛이 빼어난 정자가 있다. 덕유산 남서 사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세 골짜기를 이루고 있으니 조선의 선비들은 영남 제일의 동천이라고 하였다. 서상에서 안의로 흐르는 화림골, 수망령에서 용추사로 흐르는 심진골, 월성에.. 더보기
소촉도 감상 일사 구자무 선생의 소촉도 (燒燭圖) 그림 한 점을 감상한다. 시,서,화 삼절을 갖춘 문인화 대가인 일사 구자무 선생의 화첩에서 꺼낸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정치화된 촛불 시위가 도가 지나쳐 근심하고 한탄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달랜다는 작가의 의도가 화제에 드러난다. 무자년(2008년)에.. 더보기
내 삶의 도전과 응전 간밤에 내린 눈처럼 다가온 시련은 하나의 도전이다. 나에게만 닥쳐오는 일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한계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 .이제는 내가 응전할 차례가 되었구나. 내 삶의 역사에서 위기의 한 순간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나약하고 소심한 겁쟁이처럼 두려움 앞..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