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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무슨 연유가 있으려니 하고 산에 오른다. 천지간의 그 많은 봉우리며 산들이 발꿈치를 들어올려 정수리를 솟구치는 일이나 공중에 매달려 둥지를 튼 새들이 수직으로 비상하는 일이나 묵은 가지가 길이 되어 새 가지의 잎을 달아주고 손을 뻗게 하는 일이 그리고 나도 산꼭대기에 .. 더보기
봄날의 그늘 밤나무 낙엽 한 장이 부황 든 잔디밭 위에서 꼭두재비를 하고 있다. 미풍 한 점에도 버티지 못하고 팔랑개비처럼 돌아가고 마는 푸름을 잃은 창백한 낯빛은 허깨비일 뿐이다. 제가 존재해야 할 위치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신일 뿐이다. 생명의 축제 그 환희의 빛의 사각지대 푸른 .. 더보기
사선대에서 2 여울은 빠른 걸음으로 흐르고 묵묵한 바위는 몇 겁을 버틴건지 시내와 바위가 서로 등을 대고 있더라. 그러나 떠난 물줄기가 하늘로 흘러 다시 돌아오듯이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자 신선되는 꿈을 꾸던 바위가 눌러 앉기로 했는지 마주 보고 화해한다. 사선대는 흐르는 것과 붙박은 것의 .. 더보기
어떤 노크 소리 톡톡! 토톡! 토도독! 누군가 노크를 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던 나는 방문자를 확인하러 나간다. 아! 너였구나. 조그만 박새 한 마리. 회색 날개에 목 아래 흰 깃털을 가진 작디작은 새 한 마리다. 지난 해 유홍초가 덩굴을 말게 설치한 동쪽 창문 외벽의 고무줄에 앉아서 톡톡 쪼으며 씨방에.. 더보기
사선대에서 1 월성계곡에 돌아오니 사선대는 그 자리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여울목에서 급하게 아래로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나는 구비 구비 계곡을 흐르며 꿈을 좇아 떠내려간 한줄기의 물이었네. 강가에 늘어선 나무에서 떨어진 연한 이파리처럼 흘렀었네. 속살까지도 훤히 .. 더보기
도깨비 소품 다릅나무를 위 아래로 반으로 켜서 도깨비 탈을 만든다. (18cm * 18 cm * 7 cm) 이마에 나이테가 선명한 진한 커페색에다 눈 주위의 연미색은 염료나 물감이 아니라 다릅나무가 지닌 자연색인데 나무를 켜면 겉껍질 바로 안쪽에 채 1cm도 안되는 부분이다. 이 두 색의 대비로 공예인들의 인기를 .. 더보기
아버지의 지게 우리 고장의 전통에 사락(四樂)이라 하여 살아가는 즐거움으로 네가지를 들고 있다. 농상어초(農桑漁樵) 즉 농사짓고, 누에치고, 물고기 잡고, 땔나무를 하는 일이다. 지게를 연상하니 50년 세월을 건너 뛰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오시는 초부(樵夫) 한 분이 아련히 .. 더보기
고재로 만드는 받침대 경칩을 지나고 봄 비가 그치고 햇볕이 따뜻하다. 이런 날은 공방 문을 여는 날이다. 이런 이런 초봄인데 새 소리가 농염해졌다. 지난 겨울에는 어디서 피신을 한 것인지 이 볕에 제 깃을 펴서 말리며 짝을 찾아 구애를 한다. 지난 가을에 남원 막내 동서가 참죽나무 하나와 오래 묵은 송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