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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손톱질을 하며 화석 연료의 폭발적인 힘을 이용한 엔진톱을 사용하지 않고 재래식 무동력 톱으로 나무를 썬다 순전히 근육의 힘으로 톱을 밀고 당기며 무수한 반복 운동으로 썰어간다 엔진톱의 광기 같은 소음에 비하면 이 손톱의 쓱싹거리는 소리는 단조롭지만 음악이다 강한 쇠붙이가 나무의 몸통을 파고드는 마찰음과 얇은 톱이 오가며 내는 묘한 진동음이 싫지 않다 이 음악은 심장의 박동과 화음을 이루고 온 몸의 정기로 생산하는 몸의 음악이고 율동이다 이 숨 차고 느릿느릿한 톱질의 비능률은 엔진톱의 가공할만한 효율성을 체감한 학습 효과에 의한 것이다 예전의 선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비능률로 상대적 인식을 하지 않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는 양쪽을 오가며 모두 긍정을 한다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그리고 가치관이나 취향에 .. 더보기
징크판을 주문하다 오늘은 지붕재인 징크철판을 주문하러 경산 공장을 방문한다 친구와 함께 설계 도면을 가지고 가는데 며칠 후에 트럭으로 배송할 것이다 일일이 도면을 그려 작업하는 치밀함에 놀란다 지붕이 단조롭지 않아 작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보기
옥잠화 피어나고 옥잠화 꽃이 한창이다 식물들은 저마다 풍성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기가 있다 제 일생의 절정기에 꽃을 피운다 조물주의 선물이다 창조의 신이 절대적인 권능으로 만든 유일무이한 창조품이다 독특한 선과 특이한 형상과 다양한 색채로 만들고 생명을 불어 넣었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일체를 이루고 움과 잎과 꽃과 씨가 생명의 율동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더보기
난로 화목을 준비하며 난로에 쓸 참나무 화목을 자르고 패는 작업을 한다 하필 엔진톱이 고장이라 수리를 의뢰해 놓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길래 읍내 공구점에 가서 임대를 해서 작업을 한다 입추가 지났어도 볕이 어찌나 따가운지 작업이 힘든다 연신 땀을 훔치며 엔진톱이 강렬한 소음을 내뿜으며 나무를 분해한다 나무들은 온순히 제 몸을 맡긴다 톱날이 몸을 파고들며 창공을 향해 발돋움하던 긴 몸통을 토막토막 자른다 체인 톱날이 고속 회전하며 절단한 단면에 물관이며 체관의 흔적이 바싹 마른 채 보인다 참나무 씨앗 하나가 떨어져 움이 트고 자라던 수십 년이 요 며칠 사이에 분해된다 그 마지막까지도 베푼다 제 몸을 태워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려고 한다 더보기
단호박 호박을 여러 군데 심었더니 곳곳에 호박 넝쿨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심은 구덩이 옆의 수로 위에 호박이 건너가게 나뭇가지들을 걸쳐주었더니 좋아라며 건너온다 진입로 화단으로 척 발을 걸치더니 장미 덩굴 위로, 황매덩굴 위로, 가시투성이인 해당화 위로 뻗쳐나간다 그 기운이 하도 왕성하고 의지가 가상하여 호박 넝굴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지켜 보기로 했다 호박이 밭에 있어야지 화단을 침범하는 건 곤란하다는 통념에서 벗어난다 가끔은 호박이 화단을 점령하는 무질서 사태를 포용하는 것이다 그 주인공 호박은 포항에서 씨를 얻어왔다는 일본 단호박인데 구덩이에서 올라온 줄기가 팔목보다 굵다 세력이 얼마나 강성한지 호박잎이 크고 무성하여 샛노란 호박을 맺는데 호박이 무겁고 속이 꽉 차 있다 건네 준 분의.. 더보기
풀벌레들의 연주 가을의 초입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꼭 밤중에만 울리는 소리는 풀섶에서 돋아난다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은둔의 악사는 풀벌레들이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본다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협주하고 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벌레들의 울음이 아니라 음악이다 끊어질듯한 애처로운 음악으로 들리다가 이제는 생명의 환희를 자축하는 장엄한 음악으로 들려온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구나 은둔의 악사들이 나를 툭 깨운다 이 가을에는 보다 깊어지고 익어가라 한다 이 생음악이 연주되는 밤의 풀섶으로 발걸음을 하라한다 이어폰은 놔두고 밝은 랜턴도 놔두고 빈 몸으로 맑은 정신으로 나오라 한다 더보기
제피따기 제피나무(초피나무) 열매를 딴다 농촌 마을에는 집집마다 한 그루가 있을 정도로 제피는 우리의 미각에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 고장에는 예전부터 어탕국수를 즐겨 먹었는데 제핏가루를 뿌려 먹었다 제피만이 가진 독특한 향이 우리 몸에 저장되어 수시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제피가 빨갛게 익으면 검은 씨앗을 둘러싼 껍질이 벗겨지고 씨앗은 분리해서 약재나 묘목 생산용으로 사용한다 밭가에 제피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봄에 갓 돋아나오는 어린 잎을 따서 쌈에 넣거나 반찬을 만들면 강한 향으로 입맛이 새로워지곤 한다 올해는 제피 열매가 많이도 달렸다 올해처럼 열매를 본격적으로 따 본적이 없는데 큰 소쿠리로 세 개 분량인데 10Kg은 족히 될 것 같은데 시중에서 비싸게 거래가 된단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얇게 펴놓고 .. 더보기
늦여름에 씨 뿌리고 모종을 심으며 입추를 지나도 연일 폭염 경보가 발령된다 사람들이야 8월 염천이 피하고 싶지만 농작물들에게는 더위가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지난 해에 씨 뿌리는 시기를 맞추지 못해서 작물들이 생육하지 못해 비실거리는 것을 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올해는 때를 놓치지 않아야지 "라며 다짐한대로 밭 두둑을 짓고 배추 모종을 심는다 비좁은 포트에서 자란 모종의 갸날픈 허리 춤을 쥐고 잎 한 장이라도 묻히지 않게 조심스레 심는다 흙을 꾹꾹 눌러주며 기운을 북돋우는 일도 잊지 않는다 무우씨도 심는다 씨를 묻어두고 며칠을 기다리면 경이로운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무우씨 한 귀퉁이가 딱딱하던 껍질에 균열이 생기고 응축된 기운을 모아 그 틈새로 분출하며 생명의 기운이 싹 틀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일은 대지의 무한한 은총을 실제적으로 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