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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용추폭포 용추폭포 두타산 준령 수백 구비 돌아 돌아 골바닥을 五體投地하는 순례자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찬가와 기도로 걸어온 길은 이제 끊어졌노니 낭떠러지로 몸을 던져야 한다. 투신하는 궤적은 텅빈 공중으로 난 길이려니 가야 할 길이 절박하지만 매의 눈처럼 아래를 응시하며 깊.. 더보기
갈치1 갈치 1 낚시 바늘에 걸린 늘씬한 은빛 바다가 톡톡 도마 위에서 토막날 때마다 흘린 은가루 점액질이 끈끈하다. 끼니를 잇기 위한 생존 본능은 분별심보다 앞서 분출하는 욕망의 마그마 쇠톱날 이빨로도 끊을 수 없었던 유혹의 밧줄 목구멍 너머로 파고드는 통한의 갈고리 정작 토해내는 .. 더보기
곰삭음 빗방울만 간신히 피한 농가 헛간 외벽 볏짚 황토벽에 얼기설기 엮인 시래기 한다발 볕에 바래고 바람에 푸석해져 부황 들고 생기 잃은 흑백 얼굴 사진처럼 닳아서 바스러지는 추억의 파편들 젊은 날 터지는 가슴으로 앓던 속앓이 한 가닥 이제서야 곰삭고 있다. 더보기
구천동의 밤 구천동의 밤 해가 터벅 걸음으로 산마루를 돌아가면 벌써 골짜기 눈꺼풀에는 잠이 묻어온다. 아직 산마루에 餘光이 걸렸는데 이윽고 산등성이마저 졸기 시작하면 구천동 나무들, 바위들, 산새들까지 모두 꼭대기로 올라 서로 손을 맞잡는다 세상은 이제 한 가닥 부드러운 線이 되어 강강.. 더보기
남포와 반딧불이 반딧불이가 실종되었단다. 어둠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아이들을 관제탑 유도등처럼 순수와 낭만의 길로 이끌던 불의 요정들 백 개는 비추어야 1룩스나 될까한 서치라이트 그 희미한 빛을 생산하기 위해 풀잎 이슬 머금고 두엄더미에서 꿈을 꾸며 혼신의 힘으로 꽁무니에 발광기를 가동.. 더보기
섬진강 늪에서 섬진강을 따라 흐르다 늪에 들었다. 흐르지 못해 사무친 것인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거품을 물고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다 샛강을 달려오던 거칠어진 숨을 가라앉히고 있다. 느리고 지루한 시간이 얼마를 머무른 것인지 조개 빈집에는 오랫동안 뻘흙이 산다. 삶과 죽음의 함정이 음산.. 더보기
천자산 정상에서 천자산 정상에서 1. 천자산에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2. 무례한 케이블카는 미인의 오똑한 콧날이며 미끈한 허리춤 같은 은밀한 곳까지 훔쳐내는데도 여인은 품에 안고 저고리 섶까지 열어 백설로 화장한 가슴에 품어주었다. 고고한 기품, 충천하는 기상은 깎아 .. 더보기
아내의 돋보기 아내의 돋보기 눈을 뜨지 않아도 행복은 머리맡에 햇살처럼 퍼진다 팔 펴면 닿을 거리에 속삭임이 응답하는 거리에 그녀가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아도 행복이 온 방에 질펀하다 돋보기를 낀 아내의 책장 넘기는 소리에 늦잠이 깨기 때문이다. 돋보기 너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