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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하는 사람은 소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한 소비사회다 생산은 불유쾌한 노동이 뒤따라야 하지만 소비는 자유가 보장되고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은 소비자들의 낙원을 상징한다소비가 총체화된 사회에서는 지금 필요한 것이나 갖고 싶은 것 밖에 없다마술 램프의 알리바바가 진화한 디지털 시장에서 주문만 하면 이틀 후에 집으로 날라다 주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모든 욕구를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는 이 세계에서 시간은 영속적인 현재로 축소된다희망의 시간성은 미래다 희망하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 욕망을 절제한다현재의 욕망 충족을 위해 소비하기보다 미래를 위해 욕망을 유예한다희망하는 사람은 소비하지 않는다 더보기
동계 선생의 종가 정온 선생 종가는 이웃한 위천면 강동에 있다 가끔 이곳을 방문객들에게 동계 종택으로 안내하는데 종손 어른(정찬수 옹)을 뵈면 공손히 인사를 드린다 그 공손함에는 종가를 지키는 종손에 대한 예우의 차원과 동계 선생의 충절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깎듯함인데 우리 문중과의 인연으로 인한 유대감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동계 선생께서 충신의 간언이 화가 되어 제주도 대정현에 위리안치의 10년 귀양살이를 할 때 사람을 보내어 서신 한 통을 전한 분이 갈천(현재 농산리)의 만월당(정종주) 선조다내재종 형님에게 귀양의 고초를 위로하며 사당(만월당)을 지었는데 기문을 부탁한 것이다동계선생이 기뻐하며 기문을 써 주었고 그 내용이 잘 보존되고 있다귀향해서 여러 해 동안 문중 일을 보필하며 모르고 있었던 문중의 자.. 더보기
거창읍 추억의 거리 대한이 밥값 한다고 볼에 와닿는 바람이 찬 기운을 물고 있다어린 시절에는 어찌나 추웠었는지 연상을 하는데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추억 한 올이 생각난다중학 시절부터 시작한 자취생의 냉돌방은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일주일치 연료인 장작 한 아름으로는 쪼개서 겨우 밥을 해 먹을 분량이라 군불을 넣을 엄두도 못냈다지금 생각하면 성장기의 어린 소년에게 가혹한 현실이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추웠을 뿐 처지를 비관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당시의 소년은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고충이었을 뿐 요즘과 같은 편리와 풍요에 비교하지 않았다읍내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친구와 비교하지 않으며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이 없었다그런 소년이 이제 칠십대가 되어 귀향을 하였고 오늘은 자취하던 읍내에서 쇼핑을 하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아내.. 더보기
한마을 커플 우리 어머니는 본가에서 시오리 밖의 위천에서 시집 온 위천띠기였다 아내는 택호가 없다 직업인으로서 0선생이나 서한당이란 아호나 이름으로 불린다본동띠기, 한동띠기, 지동띠기는 같은 마을에서 혼인 한 부인을 호명하는 말이다띠기는 댁의 경상도 방언이다지동이란 자기 동네, 제 동네의 경상도 방언이다예전에는 이런 부부가 많아서 동일한 의미의 택호가 여럿 있었던 것이다택호를 불러 한 여성의 정체성을 밝히는 풍습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으니 의식의 변화가 사회의 발전 속도보다 지체되는 현상이다전통 농경사회를 백년 이전으로 거슬러 갈 것도 없다60년 전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대다수의 부모님 직업은 농업이었다마을 앞 도로를 신작로라 하였는데 자갈을 깔아 어쩌다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일고 돌이 튀었다 도로 부역을 하.. 더보기
수줍음의 윤리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해 본다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몽우리는 꽃의 수줍음이다한 순간에 요술을 부려 화려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첫 피어남으로 긴장과 조심스러움으로 찬란한 빛을 대면하는 수줍음이다작고 연한 꽃잎이 오무린 채 서서히 잎을 펼쳐내는 기운에는 미약한 존재의 겸손이 배어있다예전에 맞선을 보는 양가집 규수들은 목전의 도령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볼이 붉어지는 수줍음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꽃의 초심은 수줍음이다전통 혼례를 올리는 신부는 수줍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하이데거는 수줍음이라는 무위의 윤리를 내세운다하이데거는 말년에 자신에게 숙소를 제공한 마르셀 마티외라는 여인에게서 받은 느낌을 글로 쓴 적이 있다그녀의 고향인 프로방스의 광활한 풍경이 안주인을 기이한 수줍음으로 가.. 더보기
반상의 상상 바둑 중계 방송을 보다가 반상의 치열한 전투와 무궁무진한 변화를 보며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기왕이라는 바둑계의 정신적 명예와 자본주의가 내건 3억원이라는 상금을 쟁취하려는 전쟁터!두 천재 기사가 바둑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수읽기에 몰두하고 있다턱을 괴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다리를 의자 위로 올려 양반다리를 하거나 머리칼을 빙빙 돌리며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유불리를 판단하느라 두뇌가 치열하게 작동하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인공 지능이 시시각각으로 최선의 수와 승률을 알려준다 이 난해한 판단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인간이라는 천재는 인공지능에 비교하면 둔하고 미숙하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천재들이 AI 스승에게 무릎을 꿇고 조아리며 제자로 삼아달라고 한다놀랍게도 AI도 여러 종족들이 있고 우열의 차이.. 더보기
정호승 시인 이 추운 겨울에는 고소하고 뜨끈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이 생각난다앞으로 추어탕을 대할 때마다 정호승 님의 이 글이 떠오를 것이다시인의 글을 대하면 마음이 한없이 청량해진다얼음에 갇혀 꽁꽁 얼어붙은 미꾸라지가 절명시를 쓴 시인이란다미꾸라지가 어둡고 갑갑한 진흙탕의 뻘을 죄다 토해내고 차갑고 투명한 얼음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으며 얼어서 경직된 몸으로 시를 썼다는 상상력은 찬란하고 고결하다이 겨울에도 미꾸라지를 시인으로 승화 시키는 시인의 낭만이 훈훈하게 배어나온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흔하고 사소한 풍경에서도 색다른 눈으로 보고 사유하며 삶의 서사를 끌어내는 정호승 시인의 시가 한겨울의 청량함만이 아니라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더보기
빅 컨츄리 영화 감상 서부 영화 한 편(빅 컨츄리)을 시청한다 좋은 영화는 깊은 울림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데 바로 이런 영화일 것이다그 중의 한 장면을 사유의 시선으로 들여다 본다두 목장주가 소 떼를 먹일 물 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겪는데 그 구조를 화해와 평화로 이끄는 신념에 찬 주인공의 서사시다 두 목장주인 벌 아이비스와 찰스 빅포드는 이기적 욕망을 추종하여 상대를 원수로 여기며 공존과 화해를 하지 못하는 기존의 악질적인 구조요 폐습이다 이 때 소령(빅 포드)의 딸의 약혼자인 맥케이(그레고리 펙)가 이 고착적인 구조를 깨고 평화로운 구조로 바꾸기 위해 등장한다그는 기존의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약혼녀와 결별하고 약혼녀의 친구이자 교사인 줄리의 오아시스와 같은 토지를 매입하여 양가의 공존과 평화를 도모하려 한다목장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