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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명절 설날을 학수고대하던 어린 시절이 한없이 부럽고 되돌아오지 않는 추억이라 아쉽고 허전하다 설 치레라고 고작 옷 한 벌과 운동화 한 켤레만으로도 행복했던 소박함이 그립다 만사를 제쳐두고 명절에는 당연히 귀향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속박으로 여기지 않았던 착한 심성도 그립다 설이라고 올 사람도 없고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설렁한 분위기라 쓴 웃음만 나온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전에 비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시대가 많이 변했어'라며 볼멘 소리를 한다 더보기
진눈깨비 내리는 날 엊그제 입춘이 지나가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백설의 옷이 젖고 눈이 퉁퉁 불어 있다 눈물을 털어내지 못해 무거워진 몸이라 곧바로 지상으로 낙하한다 여유가 없다 눈이 낙하산처럼 활개를 펴며 지상에 사뿐히 안착하지 못한다 창공을 딛고 하강하는 걸음과 걸음 사이의 엇박이 없다 입춤의 대가들만이 떼어놓을 수 있는 파격의 미학이 없다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부유하는 자유가 없다 목적의식에 억눌린 여유로움이다 오로지 피할 수 없는 중력에 추락한다 봄으로 가는 경계에서 다급해진 것인가! 입춘의 위력에 압박을 받는 것인가! 눈과 비의 겅겨가 모호하다 더보기
축구 - 전사들의 사투 연일 축구 경기를 보느라 수면이 고르지 못하다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점에서 벗어나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재미도, 배우고 느끼는 점도 훨씬 더 많아진다 이 단체 경기를 보며 인간의 본성을 유추해 보기도 한다 집단 간의 저 치열한 투쟁 정신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소속 집단의 존립과 명예를 위해 몸을 던져 부딪치고 온 몸을 방패로 삼는 외적 방위군, 견고한 빚장을 뚫기 위해 특별 임무를 띤 공격수를 조직적으로 가동한다 선수들은 이미 전사가 되어 두 경우의 수 밖에 없는 승리와 패배의 운명적 기로에 놓인다 이미 경기를 넘어 전쟁의 상징이기에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관중이 아니라 운명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마치 공동체가 생존이냐 복속이냐를 결정짓는 문제처럼 폭발성을 갖는다 그렇게 부추기는 .. 더보기
입춘에 입춘이라며 새 해가 시작되는 첫 절기를 기념하는 사람들이다 길상을 빌며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비는 글들을 서로 전하기도 한다 봄이 온다는 전갈은 기다림으로 두 손을 모으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폭풍한설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정처없이 오가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꿈 꾸며 기다리기에 봄은 희망이며 더욱 절실한 이들에게는 갈망이다 삶은 늘상 뜻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누구에게도 실패와 좌절의 암굴에서 희망의 불씨들을 지펴야 한다 봄은 생동하는 님이요 여인이다 잉태하는 가임의 처녀다 겨우 내 인고로 황폐한 가지에 움을 돋게 하는 기운이다 그 작은 움이 트고 자라게 하고 잎이 돋게 하는 약동하는 사랑이다 대지의 봄은 아직 태동하는 중이라 그 기운은 미동에 있어 여간 섬세하지 않고서는 감각하기 쉽지 않다 화.. 더보기
까치호랑이 민화를 감상하며 민화인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읽어본다 호랑이가 앉아있는 자세와 표정을 천천히 살펴보자 맹수의 위엄을 드러내는 공격적인 자세가 아니라 편안한 자세로 쉬면서 까치를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듯 하다 덩치만 컸지 온순하고 귀엽고 웃기는 표정이다 까치에게 놀림을 당하는 바보스러운 호랑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수의 제왕으로 여겼던 호랑이는 액을 막아주는 벽사의 기능을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숱한 액운을 피하기 어려워 새해 벽두에 무탈을 기원했다까치는 새해의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믿음을 주는 길조었다 이 그림 속의 까치와 호랑이는 사람의 평안을 염원한다 또 다른 측면은 강자와 약자를 상징한다는 점이다 백수의 제왕인 강자와 새는 비교도 안되는 우열적 관계다 그런 자연적, 태생적 차이를 넘어서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을 .. 더보기
백남준의 세기적 퍼포먼스 백남준은 남들이 감히 상상도 못하는 일을 벌이는 모험적 천재요 예술적 테러리스트요 몸으로 공연하는 전위적 행위예술가다 1998년 그가 택한 무대는 백악관 만찬장이었으며 조연은 미국 대통령 부부와 고위급 인사들 관람객은 의장대원들이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이 악수를 하려고 하자 일어서며 허리띠 없는 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렸고 속옷을 입지 않아 남자의 알몸이 노출되는(알 몸을 노출하는) 짧은 퍼포먼스였다 우연이 빚은 실수인지 의도된 행위인지 백남준은 끝내 함구했고 많은 사람들이 세기적인 퍼포먼스었다고 천재의 해학에 통쾌한 박수를 보냈다 더보기
공 한 개의 놀이 문화 아시아 동네의 축구 선수들이 나라별로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아시안컵 겅기가 진행 중이다 연일 선수들이 경쟁하며 소속국가를 위해 전사처럼 헌신하는 모습이 때로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승패라는 구조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면 축구라는 스포츠의 색다른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응원하는 나라가 당연히 자국이겠지만 승부에서 진다하더라도 승패를 초월한다면 많은 것을 누리고 배울 수 있다 어느 나라 누구의 발리슛은 참 멋졌어 전패를 했지만 어느 나라는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었군 축구와 국력의 디커플링이 매우 흥미가 있어 미래에 촉망받을 선수 열 명은 누구일까 승패의 구조는 극히 단조로운 이분법에 기초한다 한 쪽이 이기면 상대는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는 승리가 목표지만 한 차원 넘어설 수 있으면.. 더보기
무괴아심을 새기며 무괴아심(無愧我心)은 외종 아우의 신념을 함축하고 있는 글귀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을 것이다 공직자로 평생을 살며 사회에 봉사한 자신의 경구이며 당당한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아우의 집 어느 벽에 오랜 세월동안 걸려 있을 것이다 한 집안의 가훈이 되고 자식들이 부친의 고상한 뜻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