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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訥辯(눌변)의 미학 젊은 시절에는 화려하고 유창한 말의 유희를 즐겼다. 말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따발총처럼 쏘아대거나 상대의 논리의 허점을 찾아내기 바빴고, 인기에 영합하는 화려한 용어라던가 때로는 외국어,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인텔리를 모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말에는 仁이 없었다. .. 더보기
노루귀 언제였던가? 아스라한 기억 저 편에서 노루귀를 처음 만난 일을 회고한다. 아직 춘흥이 물 오르기 전 성급한 봄나들이 길 노루목 산모퉁이 두어 번 돌아 응달진 툇마루에 다소곳 앉은 시골 처녀 도톰한 귓불에 솜털까지 영락없는 노루귀의 형상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앙징스런 표정 기어이 .. 더보기
假想의 선비 여행 - 화림동을 선비처럼 걷다 여행의 최고의 즐거움은 최상의 자유를 누리는데 있으리라. 좋은 同行이 있어 함께 하는 여행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겠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은 결정과 선택의 권리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고 쉴 자리에서 쉬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제.. 더보기
구룡포 바다의 새벽 구룡포 바다의 새벽 내 침실을 빠져 나와 구룡포 바다의 침실 한 켠에서 한밤 내내 바다의 침실을 훔쳐보았다. 불 꺼진 바다 바다는 치열한 몸짓으로 바다는 격렬한 음성으로 너울거리다가 철썩거리다가 별들이 떨어지며 밤은 깊어 가고 새벽녘에 바다가 절정을 내뱉으며 아기 태양이 솟.. 더보기
벽을 쌓아야 할 때 가끔 도회지에 다녀올 일이 생긴다. 다녀온 후 늘 마음이 어수선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마치 황토를 넣은 정화수, 지장수를 만들듯이 뜰을 거닐거나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내면에 깊게 침잠.. 더보기
고독 예찬 거창읍을 휘감다가 끝내 貫通하며 흘러가는 渭川을 따라 홀로 걷는다. 두 강줄기가 시가지를 안고 흐르다가 合流하는 合水에서 서로 다른 혈통의 하천이 몸을 섞어 태어난 황강이 느릿하게 걸으며 大海로의 긴 여정에 든다. 나는 오늘 거대한 음모 하나를 꾸민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 더보기
동래 한량 문장원의 입춤에 매료되다 오래 전부터 춤을 추고 싶다고, 배울만한 데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그 내면의 욕구의 발로인지, 말이 씨앗이 되어 내린 인연인지 진옥섭님의 '노름마치'란 책을 두 번씩이나 읽게 된다. 원체 전통음악에 대한 소양도 지식도 소질도 없는지라 용어에 대한 이해 정도의 기초 지식을 .. 더보기
안강 들판을 걸으며 안강 들판을 가로질러 걷는다. 서쪽 산대에서 동쪽 양동 마을까지 농로를 따라 걷는다. 그 푸르던 성장과 번영의 날들이 지나고 황금빛 수확을 끝내고 차츰 말라가며 마지막 남은 유산을 물려주는 대지는 이제 잿빛이다. 일구었던 재산을 죄다 내주고 남은 육신의 옷가지 같은 볏짚들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