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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풀의 이주 이 가련한 풀 너는 어디서 날아왔어? 이 거주지의 주인인 내 동정 섞인 말이다 연약한 줄기로 풀섶에서 엎드려 있구나 허리를 빳빳이 세울 수는 없지만 고개를 들고 생기 넘치는구나 근처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와 돌 틈지기에서 뿌리 내리고 눈망울을 뜨고 첫 봄을 맞는다 아마도 이곳으로 이주한지 한 두해 밖에 되지 않았을 노마드 바람을 타고 이곳에 정착했구나 바람은 발없는 노마드들을 위한 발이 되고 경계를 돌파하는 엔진이다 차별하지 않는 바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운행하는 대자연의 수송선이자 은총의 입김이다 주저하지 않고 척추 같은 막대기 몇 개를 세워주고는 이 뜰의 정주민으로 받아들인다 더보기
쌍지창 이름을 짐짓 모르는 체 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문도 그러는 척 하고 난생 저음으로 대면한다고 치고 한참을 보노라니 쌍지창들이 발사대에 가지런히 배열되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를 기다렸는지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지 어디로 가려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데 다만 지나치는 내가 걸음을 멈추고 미소 짓고 너는 쌍지창을 발사하기 일보 직전이고 (쌍지창은 고유 명사가 아님) 더보기
도꼬마리 도꼬마리 씨앗 몇 톨이 내 장갑과 바짓가랭이에 척 올라탄다 돌발적인 무임 승차다 씨줄 날줄을 얽어맨 틈에 안전벨트 삼아 제 돌기들을 찔러넣는다 이 순간을 얼마동안을 기다린 것인지 안도와 반가움이 묻어나온다 1.4 후퇴시 끊어진 철교에 다닥다닥 붙은 남행 피난민의 간절한 염원과 절박함도 배어나온다 귀찮아 떼어내지만 이제는 떼내는 장갑의 손가락에 악바리처럼 매달린다 필사의 몸부림에 짜증어린 얼굴을 펴고 잠시 일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어디 보자 타원의 체형 전신에 돋아난 돌기는 이동체에 달라붙기 위해 특화된 진화의 수법이구나 바람을 타고 가기에는 육중한 체구라 동물의 털이나 사람의 바짓가랭이를 노렀구나 날개를 갖지 못하는 것들도 비행할 수 있고 다리가 없는 것들도 걸어갈 수 있음을 진화의 지혜가 일깨운 것이로.. 더보기
쇠물팍은 마르고 지인의 블루베리 밭에 잡초를 막기 위해 부직포를 까는 작업을 하다 보니 뜻밖의 사건에 조우하게 된다 밭두둑에 말라 비틀어진 줄기가 곳곳에 많이 있어 이것을 캐내지 않으면 부직포를 덮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캐내기로 하던 참에 지나치는 분이 한 마디 한다 "세물팍이 징그럽그만요 " 쇠물팍이라니 ...... 소의 무릎 같이 생겼다니....아하 요 녀석이 우슬이로구나 너 잘 만났다 반갑다 익히 이름은 들었지만 오늘은 피상적인 조우가 아니라 뜻있는 사건 하나를 만들어 보자구나 너도 괜찮지~이잉 나는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하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일을 놀이처럼 한다 나는 울타리 바깥을 욕망한다 어떻게 하면 블루베리 밭을 잘 가꾸어 수확량을 늘릴까 하는 유능한 농부의 꿈은 울타리 안의 목표에 불과할 뿐 내 꿈은 그 .. 더보기
중간의 지옥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종의 미는 끝맺음을 강조한다 시종의 중요성은 널리 강조되는데 비해 본격적인 중간의 과정은 어떨까? 한라산 등반을 한 적이 있다 시작을 할 때는 충분한 체력과 기대와 설레임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길을 가다보면 초반의 발걸음은 차츰 무거워지고 숨결은 거칠어진다 발길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은 어찌나 많은지 ......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은 왜 그리도 냉정한지.......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삼천배를 바쳤다더니 한라산은 정상의 환희를 맛보는 댓가로 삼만보를 요구한다 이렇듯 시작이 의미있는 종결로 이어지려면 중간 과정은 험난하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이 중간의 과정을 지옥이라 표현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 같아.. 더보기
진정한 소통 얘야 우리 뜰에 산책하러 가자 너는 처음 보는 꽃들이겠구나 이 꽃 이름은 할미꽃, 저 나무 이름은 노각나무란다 이름을 아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다 나는 꽃이나 나무를 대할 때는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 한단다 그런 마음으로 대하면 힐끗 바라보지 않고 자세히 관찰을 하게 되지 눈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의문을 품고 물어보기도 한단다 그러다 보면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단다 어른들은 소통이라고 하지 할아버지는 이 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으응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단다 이른 봄에는 아기꽃의 귀여움이, 무더운 여름에는 꽃이 피어서 청년의 왕성한 힘과 아름다움이 , 가을에는 꽃이 지고 씨를 맺으며 쓸쓸한 노인처럼 다가 오기도 하지 또 어떤 날에는 꽃이 고생을 이겨내는 불.. 더보기
망설이다 말이 어눌하다가 이제는 더듬는다 예전에는 망설임이나 걸림없이 튀어나오던 말이 위축되어 선뜻 나서기를 꺼린다 선택하려한 말을 대체할 수 있는 유사한 말들이 쭈욱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호기롭게 그 미묘한 차이를 무시했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깊어진 것인지 소심한 것인지 혀가 꼬이기도 하고 입술이 둔해진다 자연히 말수가 줄어들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여지며 입놀림이 둔해지고 어눌해진다 말 한마디라고 제 멋대로 나오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명령에 흠칫 놀란다 잠깐만 멈춰 좀더 기다려 최적을 찾아야 해 세상에 같은 것이라곤 없어 같은 말에도 다른 의미가 담기지 같다는 것은 유사할 뿐이지 유사한 것들 사이의 숱한 차이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들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표정이.. 더보기
청개구리 울음 시사프로에 누가 누구를 청개구리 같다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를 듣고 지난 여름의 청개구리 한 녀석을 떠올린다 연못가에서 청개구리의 유난스러운 울음 소리를 들으며 관찰해 보았다 가까이 접근하면 뚝 끊어졌다가 멀어지면 다시 큰 소리로 우렁차게 악바리처럼 어찌나 집요하게 울어대는지.... 도대체 어떤 녀석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놀랍게도 손가락 두 마디도 채 되지 않는 작디작은 청개구리였다 뒤늦게 알고보니 2.5~4cm의 체구를 가진 수컷 청개구리는 턱 아래 울음 주머니가 있어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데 번식을 위한 구애의 소리이며 먹이 활동과 관련있는 소리란다 이렇게 왜소한 체구에서 토해내는 울음은 사자후로구나 일대의 모든 와군들의 집단 울음을 압도하는 근성과 기개를 가졌구나 내 손아귀에서 울음을 뚝 그쳤지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