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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이사 소나무 한 그루가 이사를 간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남근 같은 뿌리는 배냇향 담긴 흙더미로 칭칭 동여맨 채 지난 평생 일구었던 무성한 잔솔가지 헌 짐짝 버리듯 떨구고 긴 화물 트럭에 실려 중심을 잃고 너풀너풀 춤추듯 가더니 차멀미에 어지러워 아예 벌러덩 누워서 간다. 뿌리.. 더보기
수족관 7번 국도변,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배기 횟집 수족관 파도도 너울도 없는 이 작은 바다에도 높은 옹벽을 타고 넘은 파도 소리와 갯내음은 실향민들에게 전해지는 애틋한 그리움이다. 난민 수용소-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포로의 혈관에 꽂힌 해수 링거관이 뒤엉키고 인공 호흡기.. 더보기
보청기 보청기 발사된지 100년이 넘은 인공위성 한 척 - 아득한 은하계를 탐사하는 중이다. 동료 대원들은 우주 공간에 묻히고 재충원 없이 홀로 남은 함장. 낡아서 재투자를 망설인 것인지 부속품 교체가 되지 않아 본부와 교신에 혼선이 잦다. 버섯 같은 집에서 홀로 사는 새말 할머니가 세상을 .. 더보기
일포 이우원 선생의 동학 소리(3) 그는 그늘이 깊다. 그런 그늘은 사람답게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윤리적 미덕이다. 그늘이 깊어져 聖俗성속이 하나 되고 지상과 천상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거룩하고 신령함이 배어날 때 김지하 선생이 말하는 ‘흰 그늘’이 되는 것이다. 그늘이 깊은 그의 소리에는 시김새가 .. 더보기
일포 이우원 선생의 동학 소리(2) 수운 최제우 교주께서 신열로 몸이 펄펄 끓는 중에 신내림을 받은 영적 체험은 시천주 사상을 낳게 된다. 새 세상을 열기 위해 한울님을 지극한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인간과 우주를 주관하는 초월적인 신과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신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상인 것이다. 자신에게도 그.. 더보기
일포 이우원 선생의 동학소리(1) 한시 병풍 한 폭으로 운치를 낸 간이 무대가 차려지고 여러 풍류꾼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자! 이제는 일포 선생의 동학 소리 <천명>의 차례다. 나는 동학쟁이요, 백수 건달이라는 자기 고백이 허심탄회虛心坦懷하다. 서산에 해지면 동산에 달뜨니 건달이 일낼 때가 되었다고 의.. 더보기
부네탈에 끌리는 이 내 심사 부네탈 남정네라면 분내음이 나는 저 여인에게 한번 쯤 마음이 動할만하다. 아마도 임자 있는 몸이 아니라 과부나 기생이나 소실일 개연성이 높은 공공의 꽃이기 때문이다. 가늘게 뜬 눈에는 숱한 남정네를 향한 은근한 추파가 드리워지고 길게 늘어진 눈꼬리에 배시시 홀리는 미소와 작.. 더보기
블랙커피 일곱 잔의 추억 “어머! 이 아저씨가 여기 있네.” 기원에 배달 온 다방 아가씨가 흠칫 놀라며 소리친다. 몇 판 째 바둑판에 머리를 쳐 박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어 흘낏 바라보자 “아저씨. 아까 우리 다방에 왔던 분 맞지요?” “아! 예 그런데요.” 너덜너덜해진 기억의 주머니 안에 남은 추억 몇 가닥.. 더보기